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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 충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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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CE #COMEDY #20YEARS

네가 특별해지는 순간

에피소드

네가 특별해지는 순간 — 작품 소개

20년 지기 윤여름과 강은호의 티격태격 일상.

#로맨스 #코미디 #20년지기 · 10개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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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1: 불알친구의 조건

20년 지기 윤여름과 강은호의 티격태격 일상.

"야 강은호! 빨리 안 뛰어와? 나 오늘 스트레스받아서 1단계 마라탕 안 먹으면 쓰러질지도 몰라!"

"윤여름, 너 어제부터 야식 끊고 다이어트한다고 난리 치지 않았냐? 내가 뛸 기운이 어딨어."

"오늘은 예외야! 내 걸음 수 보이지? 회사에서 만 보 넘게 걸었다고!"

"그래, 고생했다. 근데 마라탕에 꿔바로우까지 시키면 고칼로리 폭탄인 건 알고 먹자, 친구야."

"잔말 말고 당면이랑 푸주나 팍팍 담아! 계산은 강은호가 한다!"

"내가 왜? 저번 주에 네가 술 먹고 내 지갑에 토할 뻔한 거 덮어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하네."

"아, 진짜 치사하게 20년 지기끼리 과거 들추기냐? 내가 초등학교 때 너 오줌 싼 거 비밀로 해줬잖아!"

"야!! 식당에서 그 얘기 좀 하지 말라고 했지! 주변에서 다 쳐다보잖아!"

우리는 8살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라 중, 고등학교를 나란히 졸업한, 징글징글한 28살 동갑내기 절친이다.

"오구오구, 우리 은호 창피해? 그럼 꿔바로우 대자 시켜주면 내가 조용히 밥만 먹을게."

"알았으니까 제발 입 다물어. 너 이번 주 주말에 소개팅한다며? 옷은 멀쩡한 거 입고 나가냐?"

"당연하지! 우리 회사 박요한 대리님이 진짜 괜찮은 사람이라고 주선해 줬단 말이야."

"김설아 주임님도 그 사람 사진 보더니 완전 훈남이라고 난리 치셨어. 나 드디어 연애한다!"

"어휴, 김설아 주임님이 사람 보는 눈이 없으신 거겠지. 네 그 털털한 성격 받아줄 남자가 흔한 줄 아냐?"

"뭐래! 나 소개팅 나가면 완전 조신하고 여성스러운 척할 거거든? 네가 몰라서 그래!"

"퍽이나. 마라탕 국물 앞치마에 다 튀기면서 먹는 애가 소개팅 첫날부터 파스타 잘도 먹겠다."

"너 진짜 한 대만 맞자. 넌 나 남친 생기면 서운해서 울지도 몰라!"

"내가 운다고? 동네잔치 열고 현수막 걸 거다! 제발 내 옆에서 좀 떨어져라!"

"흥, 두고 봐. 이번엔 진짜 완벽한 연애를 시작할 테니까!"

이렇듯 우리는 서로의 연애사를 줄줄 꿰고 있으며, 연인이 생기면 가장 먼저 축하(와 조롱)를 해주는 완벽한 남사친, 여사친이다.

에피소드 2: 스매시와 헛스윙

주말 아침 배드민턴 코트에서의 진검승부.

"야 강은호, 주말 아침 8시부터 체육관으로 사람 부르는 게 어딨어! 나 소개팅 준비해야 한다고!"

"소개팅은 오후 3시잖아. 아침에 땀 좀 빼야 붓기가 가라앉지. 빨리 코트로 들어와."

"아우 귀찮아. 너 또 장비 새로 샀지? 라켓 가방 빵빵한 거 봐라."

"크흐, 눈썰미 보소. 내가 이번에 아주 큰맘 먹고 새로 뽑은 명검이지."

"이게 바로 하이엔드급 명검이야. 네 그 싸구려 라켓이랑은 타구감부터 다르다고. 오늘 형의 스매시를 보여주마."

"어련하시겠어요~ 장비병 도진 거 자랑은. 맨날 나한테 지면서 라켓 탓은. 서브나 넣어!"

"너 오늘 작정했냐? 아침부터 왜 이렇게 공격적이야. 소개팅 때문에 예민한가 보네."

"잔말 말고 똑바로 안 쳐! 팔 알 배기면 네가 책임질 거야?"

"받아라 윤여름! 내 강력한 스매시를!"

"꺄악! 야! 좀 살살 쳐!"

"소개팅남 앞에서 물병 뚜껑 못 따는 척 연약한 모습 보여주면 딱이겠네! 완벽한 작전 아니냐?"

"너 진짜 얄밉게 말하는 데는 뭐 있다. 똑바로 안 쳐?!"

우리는 코트 위에서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셔틀콕을 주고받았다.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땀 흘릴 수 있는 유일한 친구.

"근데 여름아, 너 진짜 오늘 그 소개팅 나갈 거야? 사진 보니까 인상 완전 느끼하던데."

"느끼하긴! 부드러운 호감형이거든? 넌 왜 남의 소개팅에 고춧가루를 팍팍 치냐?"

"아니, 박요한 대리가 소개해 준 사람 예전에도 별로였잖아. 걱정돼서 그러지, 20년 지기 짬바가 있는데."

"질투하냐? 나한테 멋진 남친 생겨서 너 안 놀아줄까 봐?"

"미, 미쳤냐? 제발 남친 좀 생겨라. 나도 내 주말 좀 챙기게!"

"꺄악! 헛스윙! 야, 강은호! 너 방금 내 말에 당황해서 셔틀콕 놓친 거 다 봤거든? 쫄았냐?"

"햇빛, 햇빛이 눈부셔서 그래! 빨리 콕이나 주워 와, 윤여름!"

에피소드 3: 불편한 애인, 편안한 친구

각자 연애를 시작한 두 사람, 그런데 왜 편의점이 더 편할까?

한 달 뒤. 놀랍게도 나 강은호와, 윤여름은 각자 기적적으로 연애를 시작했다.

"오~ 윤여름. 카톡 프사 남친이랑 찍은 걸로 바꿨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아주."

"당연하지. 우리 호진 오빠가 얼마나 스위트한데. 넌 새 여친이랑 잘 돼가냐?"

"나야 뭐 완벽하지. 주말마다 분위기 좋은 카페 가고, 아주 이상적인 연애 중이시다."

우리는 서로 앞에서는 완벽한 연애를 하고 있다고 허세를 부렸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다.

"오빠, 이 요리 진짜 맛있네요... 호호." / "네, 수진 씨. 이 카페 사진 진짜 예쁘게 나오네요."

"여름아, 너 트러플 오일 안 좋아하지 않아? 저번엔 냄새난다고 질색하더니."

"어? 아니에요 오빠! 저 트러플 완전 사랑하죠. 너무 향긋하네요..."

"아, 속 느글거려... 당장 떡볶이 국물 들이켜고 싶다." 여름은 속으로 절규했다.

"은호 오빠, 우리 저기 핑크색 벽 앞에서도 전신사진 10장만 더 찍어줄래요?"

"하하, 그럼요. 예쁘게 찍어드릴게요."

"오늘 벌써 200장째 찍고 있다... 집에 가서 배드민턴이나 치고 싶다." 은호 역시 속으로 울었다.

결국 그날 밤 11시, 우리는 각자의 집 앞 동네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마주쳤다.

"어? 강은호? 너 여친 데려다주고 온다며 왜 벌써 여기 있냐?"

"너야말로 남친이 한강 드라이브 시켜준다며. 왜 츄리닝 입고 맥주 까고 있어?"

"아... 오빠 차 방향제 냄새가 너무 독해서 멀미 날 것 같아서 일찍 들어왔지. 트러플 파스타도 느끼해 죽겠고."

"하, 나도 인스타용 사진 찍어주다가 다리에 쥐나는 줄 알았다. 불닭볶음면 하나 사 와라."

"기다려봐. 너 좋아하는 소시지도 하나 사 올게. 아, 역시 동네 편의점이 최고야."

"야, 짠이나 하자. 애인보다 편의점에서 맥주 까는 네가 백배는 더 편하다 진짜!"

각자의 애인보다, 무릎 나온 추리닝 차림으로 마주 앉아 캔맥주를 부딪치는 지금 이 순간이 훨씬 편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애써 모른 척했다.

에피소드 4: 이별 택시와 헛소리

이별의 아픔 속에서 찾아온 묘한 감정.

"강은호... 흑... 너 지금 어디야..."

"윤여름? 너 우냐? 목소리가 왜 그래. 지금 새벽 1시인데 어디야 밖이야?"

"나 호진 오빠한테... 차였어... 강남역 뒷골목인데 택시도 안 잡혀..."

"하, 진짜 그 자식 그럴 줄 알았다.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내가 지금 택시 타고 바로 갈 테니까."

결국 연애 3개월 만에 여름은 시원하게 차였다. 나는 잠옷에 후드집업만 대충 걸치고 강남역으로 뛰어갔다.

"야 윤여름! 너 화장 다 번져서 팬더가 따로 없네. 술을 얼마나 마신 거야."

"은호야아아!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 트러플 오일도 꾹 참고 먹어줬는데!"

"그놈이 나보고 너무 여자친구 같지가 않고 여동생 같대... 흑흑! 나는 노력한다고 한 건데!"

"야, 그건 걔가 벤츠를 몰라보는 똥차라서 그래. 넌 트러플보다 떡볶이가 훨씬 잘 어울리는 매력녀야. 뚝 그쳐."

"너 지금 그거 위로하는 거 맞지...? 욕하는 거 아니지...?"

"당연하지. 자, 택시 잡았다. 일단 타. 기사님, 여기 상도동으로 가주세요."

택시 뒷자리에 여름을 밀어 넣었다. 녀석은 내 어깨에 머리를 푹 기대더니 이내 코를 훌쩍거렸다.

"은호야... 너는 나 안 버릴 거지...? 20년 지기 우정은 변치 않는 거지...?"

"당연하지. 내가 널 버리면 넌 진짜 혼잔데 어떻게 버리냐. 평생 놀려먹어야지."

"흑흑, 고마워... 나한테 남은 건 강은호 너뿐이다 진짜..."

"지독한 술 냄새 사이로 은은한 샴푸 향이 느껴졌다. 이별의 슬픔 속에 기대오는 녀석의 무게가, 오늘따라 유난히 가볍지 않게 느껴졌다."

술 냄새와 섞여 은은하게 풍기는 녀석의 샴푸 향. 평소라면 징그럽다며 밀쳐냈을 텐데, 오늘따라 어깨가 무겁지 않았다.

"야, 윤여름. 내 어깨에 침은 흘리지 마라. 비싼 후드티다."

(후우-) "안 흘려 이씨... 코만 닦을게..."

'이럴 때면 항상 나를 가장 먼저 부르는 윤여름. 그리고 아무리 귀찮아도 항상 달려 나오는 강은호. 우리는 진짜, 징글징글한 친구다.'

에피소드 5: 새벽 2시의 장례식장

가장 힘든 순간,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친구.

여름이 이별의 아픔을 잊어갈 무렵, 이번엔 내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왔다.

"은호야, 할머니께서 방금... 돌아가셨다. 서둘러서 영안실로 오거라."

"아빠... 할머니가 왜 갑자기... 알았어요, 지금 당장 갈게요."

부모님 맞벌이로 어릴 적 내 손을 잡고 키워주신 할머니였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나는 정신없이 상복을 갈아입고, 새벽 2시의 텅 빈 장례식장 복도에 멍하니 서 있었다.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그때, 복도 끝에서 헐떡이는 숨소리와 함께 누군가 달려왔다.

"강은호!!"

화장기도 없는 맨얼굴에 검은색 정장만 대충 꿰어 입은 윤여름이었다.

"너 괜찮아...? 할머니 어제까지만 해도 나보고 밥 잘 챙겨 먹으라고 전화하셨는데... 어떻게 갑자기..."

"여름아... 네가 이 시간에 어떻게 알고 왔어..."

"네가 아무한테도 연락 안 할 것 같아서 어머님한테 전화드렸지. 바보야, 이럴 때 혼자 버티고 있으면 어떡해."

여름은 주저앉을 것 같은 내 팔을 단단하게 붙잡았다.

"내가 접객실 세팅 다 할 테니까 넌 부모님 곁에 있어. 친척들 오시기 전까지 내가 조문객들 맞을게."

"여름아, 내일 출근해야 하잖아. 이러지 말고 들어가."

"출근이 대수야? 나 할머니 친손녀나 다름없어. 나도 상주할 거니까 너나 들어가서 눈 좀 붙여.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그녀는 정말로 3일 내내 내 곁을 지켰다. 조문객들의 신발을 정리하고, 육개장을 나르며 나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워주었다.

발인이 끝난 텅 빈 버스 안. 여름은 지쳐서 내 어깨에 기댄 채 잠들어 있었다.

"너도 며칠 동안 고생 많았지. 나 때문에 편하게 자지도 못하고... 미안하고 고맙다, 윤여름."

"슬픔 속에 며칠을 고생한 녀석의 지친 얼굴. 잠든 숨소리를 들으며, 나는 조심스럽게 헝클어진 앞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여름아. 너 없었으면 나 진짜 어떻게 버텼을지 모르겠다. 고마워, 정말로."

항상 왈가닥 같던 이 작은 친구가, 내 인생의 가장 큰 무너짐 앞에서 가장 거대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다는 사실이 내 가슴을 깊게 울렸다.

에피소드 6: 갑자기 예뻐 보이면 병이라던데

친구였던 그녀가 갑자기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장례식을 치른 후, 일상으로 돌아온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런데 내게 이상한 증상이 생겼다.

"야 강은호! 나 불렀으면 빨리 와야지 뭐 하고 서 있어?"

"강은호! 여기야, 여기! 안 오고 거기서 멍때리고 뭐 해!"

"어, 어... 가고 있어. 너 오늘 왜 그렇게 차려입었냐? 누구 만나?"

"차려입긴, 그냥 원피스 하나 주워 입은 건데. 오늘 날씨 좋잖아!"

여름이는 평소랑 똑같은 윤여름인데, 내 눈에는 왜 이렇게 낯설고 예뻐 보이는 건지 미칠 노릇이었다.

"아우, 바람 불어서 머리 다 엉키네. 고무줄 좀 빌려줘 봐."

"어? 얘 목선이 원래 저렇게 예뻤나? 머리 묶는 동작이 왜 갑자기 슬로우 모션처럼 보이지?"

"너... 목선이 원래 그렇게 가늘었냐?"

"뭐래. 미쳤냐 강은호? 갑자기 내 목은 왜 쳐다봐, 징그럽게."

"아니, 그냥! 살 빠진 것 같아서 말한 거다. 혼자 착각하지 마시지."

나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지만,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미쳤어 강은호. 20년 동안 코 흘리던 거 다 본 친구 상대로 갑자기 왜 이래. 이건 병이야 병.'

"우리 밥이나 먹으러 가자. 나 오늘 김설아 주임님이 추천해 준 새로 생긴 파스타집 가고 싶어."

"파스타? 너 원래 그런 거 싫어하잖아. 마라탕이나 먹으러 가자."

"나도 이제 여자여자한 거 좀 먹어볼 거거든! 빨리 와, 내가 캐치테이블로 예약해 뒀어."

여름이가 자연스럽게 내 팔장을 껴안으며 앞장섰다.

"미치겠네.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하던 팔짱인데, 왜 오늘따라 닿은 곳이 불타는 것처럼 뜨겁게 느껴지지?"

(쿵쾅! 쿵쾅!) "야, 야! 더운데 붙지 좀 마라!"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 너 진짜 어디 아파? 얼굴도 엄청 빨개졌어!" 내 20년 지기 우정이,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에피소드 7: 질투는 무의식을 지배한다

여름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남자, 그리고 끓어오르는 은호의 질투.

"여름아! 윤여름!"

카페에 앉아 여름이와 수다를 떨고 있는데, 웬 멀끔하게 생긴 남자가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어? 도윤 선배! 여긴 웬일이세요?"

"근처에서 미팅 끝나고 지나가다 네 뒷모습 보여서 들어왔지. 잘 지냈어? 더 예뻐졌네."

"아유, 선배도 참. 아, 인사해. 여긴 내 20년 불알친구 강은호. 은호야, 여긴 내 대학교 동아리 도윤 선배."

"아, 네. 안녕하세요. 강은호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여름이가 워낙 편하게 생각하는 친구라고 하더라고요."

'편하게 생각하는 친구? 이 자식이 지금 선 긋나?' 내 무의식 속에서 묘한 적대감이 솟구쳤다.

"선배, 여기 앉으실래요? 커피 한잔하고 가세요!"

"그래도 돼? 나야 여름이 얼굴 좀 더 보면 좋지. 주말에 영화 볼래? 내가 예매할게."

"아, 주말에 여름이 저랑 배드민턴 치기로 선약이 되어 있어서요."

"어? 우리 주말에 약속 안 잡았는데? 은호야 너 일정 착각한 거 아니야?"

"아니야, 저번에 네가 리닝 라켓 쳐보고 싶다고 주말에 만나자고 했잖아. 그새 까먹었어?"

"내가 언제? 아, 됐어. 선배, 주말에 영화 좋아요! 무슨 영화 볼까요?"

도윤 선배라는 작자는 아주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한 번 쓱 쳐다보았다.

"여름아, 이따 저녁에 내가 차로 데려다줄까? 비 온다던데."

"어우, 감사하죠! 저 오늘 우산도 안 가져왔거든요."

안 되겠다. 이대로 가다간 내 눈앞에서 저 여우 같은 놈한테 여름이를 뺏기게 생겼다.

"제가 데려다줄 겁니다! 저희 집 방향이 완벽하게 같거든요! 그러니까 선배님은 신경 끄시죠!"

"강은호 너 왜 자꾸 소리를 질러? 선배 놀라시게! 신경 쓰지 마세요 선배, 얘가 오늘 좀 이상하네요."

에피소드 8: 타이밍의 장난

결정적인 순간, 최악의 타이밍.

도윤 선배의 등장 이후, 나는 결심했다. 더 이상 이 감정을 숨기고 친구라는 이름 뒤에 숨지 않겠다고.

"윤여름. 오늘 저녁에 퇴근하고 한강으로 와. 할 말 있으니까."

"할 말? 무슨 할 말인데 그렇게 진지하게 톡을 보내? 무섭게."

"잔말 말고 나와. 7시까지 맥주 두 캔 사 들고 평소 앉던 벤치로 와."

[화면 배경 노을이 지는 로맨틱한 한강 공원 뷰로 전환] 나는 미리 도착해 심호흡을 백 번쯤 반복하고 있었다. 긴장돼서 미칠 것 같았다.

"강은호! 나 왔어.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네."

여름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름아. 나 너한테 진짜 진지하게 할 말 있어."

"뭔데? 너 설마 보증 서달라는 건 아니지? 나 돈 없다."

"장난치지 말고 들어봐. 나... 너를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게 된 지 꽤 됐어."

"뭐?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너... 술 마셨어?"

"나 너 좋아한다고. 진짜 남자가 여자 좋아하는 그런 마음으로. 오랫동안 참았어."

여름의 눈이 토끼처럼 커졌다. 강바람이 우리의 어색한 침묵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은호야... 너 갑자기 이러면 내가 무슨 말을..."

여름이가 막 입을 떼려는 찰나였다.

"여름아!! 윤여름!!"

"여기 있었구나! 네가 연락 안되서 한참 찾았잖아!"

"어? 도윤 선배가 여긴 어떻게..."

잠깐 시간 괜찮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며 도윤의 손에 들린 커다란 꽃다발을 노려보았다.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에피소드 9: 선 넘는 밤

우정과 사랑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그날 밤, 한강에서의 고백은 도윤의 난입으로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하지만 며칠 뒤, 여름이가 늦은 밤 내 집 앞 놀이터로 찾아왔다.

"강은호... 잠깐 나와봐. 나 술 한잔해야겠어."

"너 그 선배랑은 잘 안 된 거냐? 목소리가 왜 그래."

"응... 선배가 고백했는데, 내가 거절했어."

(짠-) "잘했네. 그 형 눈빛이 너무 느끼했어. 근데 왜 찼어?"

"자꾸... 네가 한 말이 생각나서 미치겠는 거야."

나는 들고 있던 캔맥주를 멈칫했다. 심장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네가 나 좋아한다고 했던 그 말.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는데, 밤마다 생각나서 잠이 안 와."

"여름아."

"우리가 20년을 친구로 지냈는데... 선을 넘었다가 나중에 헤어지면, 난 평생 널 잃어버리는 거잖아. 그게 너무 무서웠어."

"누가 헤어진대? 난 너랑 헤어질 생각으로 고백한 거 아니야."

"그걸 어떻게 장담해! 사람 일 모르는 건데..."

나는 그네에 앉아있는 여름이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장례식장 새벽 2시에 달려와 줄 수 있는 사람, 서로의 찌질한 바닥까지 다 아는 사람. 세상에 우리 둘밖에 더 있어?"

"은호야..."

"친구로 잃기 싫어서 내 마음 모른 척하기엔, 내가 널 너무 많이 좋아해, 윤여름."

여름의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그녀는 훌쩍이며 내 어깨를 주먹으로 가볍게 쳤다.

(쿵- 쿵-) "나쁜 놈... 이렇게 밀어붙이면 내가 어떻게 거절하냐..."

"거절하지 마. 20년 동안 돌고 돌았으면 많이 참았다 우리." 우리는 그날 밤, 길고 길었던 우정이라는 선을 완벽하게 넘었다.

에피소드 10: 엔딩: 내 20년지기가 애인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연인이 된 두 사람, 그들의 새로운 시작.

우리가 연애를 시작했다는 소식에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뭐?! 네가 강은호랑 사귄다고? 미쳤어 윤여름! 너네 맨날 서로 죽일 듯이 싸웠잖아!"

"김설아 주임님, 사람 일 모르는 겁니다. 원래 불알친구가 제일 무서운 법이에요. 그동안 친구인 척하느라 힘들었네요."

"야, 강은호! 회사 사람들 앞에서 그런 상스러운 단어 좀 쓰지 마!"

"왜? 어제는 내 볼 꼬집으면서 귀엽다고 난리 치더니 오늘은 왜 또 까칠해, 우리 자기?"

"미쳤나 봐 진짜! 밖에서 자기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죽을래?"

우리의 28살은 우정에서 사랑으로 넘어가는 서툰 적응기이자, 가장 완벽한 로맨틱 코미디였다.

"여름아, 손잡자. 구두 신어서 발 아프지? 천천히 걸을게. 나만 믿고 따라와."

"응. 근데 은호야, 우리 나중에 싸우면 어떡하지? 예전처럼 마라탕 쏘기로 화해할까?"

"당연하지. 대신 꿔바로우 사이즈는 내가 정한다. 그건 양보 못 해."

"치사하게 진짜. 그래도... 네가 옆에 있으니까 하나도 안 불안하고 편하다."

"나도 그래. 예쁜 척, 멋있는 척 안 해도 되는 연애가 이렇게 좋은 건 줄 몰랐네. 그냥 우리답게 연애하자."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따뜻한 햇살이 우리 위로 쏟아지며, 가장 편안하고 완벽한 순간을 축복해 주는 것 같았다."

"근데 은호야. 넌 진짜 나 언제부터 여자로 보였어? 솔직히 말해봐."

"글쎄... 장례식장 복도에서 너 뛰어올 때? 아니면 배드민턴 코트에서 너 헛스윙할 때?"

"아 짜증나! 배드민턴 헛스윙은 왜!! 감동 파괴자야 완전! 취소해!"

"하하! 장난이야. 그냥... 네가 내 옆에 있는 게 숨 쉬는 것만큼 당연해졌을 때부터. 넌 나한테 공기 같은 존재야."

돌고 돌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데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 20년의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우리 사랑이 무너지지 않도록 가장 단단한 주춧돌을 쌓는 시간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나를 잘 아는 내 20년 지기가, 세상에서 가장 나를 사랑해 주는 애인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연애는 이제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