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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POWER

좌표를 지배하는 자

X, Y, Z. 공간을 접어버리는 단 한 번의 손가락 튕김.

에피소드

좌표를 지배하는 자 — 작품 소개

X, Y, Z. 공간을 접어버리는 단 한 번의 손가락 튕김.

#SF #능력자 #순간이동 · 10개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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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1: 미친 박사의 블로그

양자 얽힘과 공간 도약의 실전 매뉴얼.

내 이름은 마수성. 숨 막히는 출퇴근 지옥철에 매일 2시간씩 인생을 갖다 바치는 평범한 K-직장인이다.

오늘도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 구석에 박혀, 의미 없이 스마트폰 화면만 위아래로 슥슥 넘기고 있었다.

'아, 진짜 딱 1초 만에 회사 책상 앞으로 순간이동하고 싶다.'

그것은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품고 사는 허황된 판타지였다.

인터넷의 바다를 표류하던 내 손가락이, 조회수 13짜리 기괴한 블로그 게시물 하나를 클릭했다.

게시물의 제목은 이러했다. [양자 얽힘을 이용한 육체 공간 도약의 실전 매뉴얼]

작성자는 스스로를 '김양자 박사'라 칭하는 사람이었다. 학계에서 쫓겨난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냄새가 났다.

글의 서두에는 '당신의 몸을 입자로 분해하여 원하는 좌표에 재조립하는 법'이라는 헛소리가 적혀 있었다.

평소 같으면 뒤로 가기를 눌렀겠지만, 지루함에 찌든 나는 그 미친 매뉴얼을 끝까지 읽어 내렸다.

'머릿속으로 X, Y, Z 좌표를 3D로 시각화하고, 단전의 호흡을 뇌하수체로 끌어올린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사이비 체조 같은 동작과 명상법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린 나는, 회사 화장실 변기 칸에 앉아 장난 삼아 그 매뉴얼을 따라 해 보기로 했다.

'목표 좌표. 회사 옥상의 흡연 구역.'

나는 눈을 감고 박사가 쓴 대로 호흡을 참은 뒤, 머릿속에 옥상의 공간을 완벽하게 그렸다.

그리고 매뉴얼의 마지막 지시 사항. '오른쪽 엄지와 중지를 강하게 마찰시켜 스위치를 켠다.'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내 몸을 이루고 있던 수조 개의 세포가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미친 감각이 전신을 덮쳤다.

시야가 일그러지는 모자이크 효과와 함께 공간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그리고 뺨을 때리는 차가운 아침 바람. 눈을 부시게 하는 강렬한 햇빛.

나는 변기에 앉은 자세 그대로, 회사 옥상 한가운데에 나타나 있었다.

에피소드 2: 무한의 좌표 평면

회사 옥상에서 해운대 바다까지.

"미친...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나는 옥상 바닥에 주저앉은 채 내 두 손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꿈이 아니었다.

화장실 1층에서 옥상까지. 물리적인 거리를 완전히 무시하고 공간을 도약했다.

순간이동. 만화나 영화에서나 보던 초능력이 내게 생겼다. 그 미친 박사의 매뉴얼은 진짜였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이게 현실이라니.

나는 회사 건물 밖의 텅 빈 골목길을 내려다보았다. '한 번 더 해보자.'

이번에는 요령을 알았다. 목적지를 완벽하게 시각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목표 좌표. 저 아래 골목길의 전봇대 앞.'

숨을 들이마시고, 손가락을 튕겼다.

시야가 구겨짐과 동시에, 내 발바닥에 닿는 감각이 옥상의 우레탄에서 흙바닥으로 바뀌었다.

눈을 떠보니 나는 전봇대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완벽한 성공이었다.

"하하... 하하하! 미쳤다 진짜!"

나는 그 길로 회사에 반차를 던졌다. 더 이상 모니터 앞에 앉아 엑셀을 두드릴 때가 아니었다.

내 능력이 어디까지 통하는지 한계를 시험해야 했다.

집으로 돌아와 평소 가고 싶었던 부산 해운대 바다의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띄웠다.

거리는 무려 400km.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지만, 사진으로 공간을 인식하면 가능할 것 같았다.

스마트폰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뇌리에 해운대의 모래사장을 각인시켰다.

손가락을 튕겼다.

픽셀로 흩어지는 몸.

내 몸은 원룸의 방구석에서 사라져, 끝없이 펼쳐진 에메랄드빛 겨울 바다 앞에 재조립되었다.

에피소드 3: 여권 없는 세계 여행

파리 에펠탑에서 하와이 와이키키까지.

부산 해운대에서의 성공은 내게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했다.

거리의 제한은 없다. 오직 내 머릿속에 그 공간을 얼마나 뚜렷하게 그릴 수 있느냐의 문제일 뿐.

나는 본격적으로 구글 맵스의 스트리트 뷰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좌표 인식 완료. 첫 번째 목적지, 프랑스 파리.

에펠탑 전망대.

나는 여권도, 비행기 티켓도 없이 에펠탑 꼭대기 전망대에 서 있었다.

발아래로 펼쳐진 파리의 야경. 숨이 멎을 듯한 자유였다.

출입 금지 구역인 에펠탑의 철골 끝자락에 앉아, 나는 한국의 편의점에서 사 온 캔맥주를 마셨다.

"이게 인생이지. 그동안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을까."

맥주를 다 비운 후, 나는 다시 스마트폰의 지도를 열었다.

이번엔 추운 파리의 밤공기를 피해 따뜻한 곳이 필요했다.

'목표 좌표.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

손가락을 튕겼다. 물결치는 시공간.

파리의 밤에서 하와이의 한낮으로.

하와이의 태양.

발가락 사이로 고운 모래가 느껴졌다. 내 복장은 여전히 정장 바지에 셔츠 차림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야자수 그늘 아래 썬베드에 누웠다. 세상 모든 것이 내 발아래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완벽한 자유 속에서, 단 하나의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다.

배가 고팠다. 그리고 내 지갑에는 하와이에서 쓸 수 있는 달러가 단 한 장도 없었다.

능력이 생겼다고 통장 잔고까지 초능력이 되는 건 아니었다. 현실적인 자본이 필요했다.

에피소드 4: 선의를 넘은 손끝

8,500만 원짜리 시계가 연기처럼 사라지다.

초능력자도 결국 밥은 먹어야 하고, 좋은 옷을 입고 싶다.

나는 서울로 돌아와 좁은 원룸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정직하게 살아서 부자가 되려면 백 년이 걸려. 하지만 지금의 나라면?'

범죄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잡히지 않을 수 있는 완벽한 힘이 있다면, 인간의 도덕성은 얼마나 얄팍해지는가.

나는 모자와 마스크를 푹 눌러쓰고 명품 거리가 있는 강남의 백화점으로 향했다.

가장 보안이 철저해 보이는 최고급 명품 시계 매장 앞에 섰다.

유리 진열장 안에는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힌 한정판 시계가 영롱한 빛을 내고 있었다.

85,000,000원.

내 연봉을 두 번이나 모아도 살 수 없는 금액.

매장 안에는 덩치 큰 보안 요원 두 명이 진열장 양옆을 지키고 있었다. 물리적인 접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내게는 '공간의 빈틈'이 보였다.

나는 매장 밖 벤치에 앉아 진열장 내부의 공간을 머릿속 좌표로 설정했다.

유리를 깨지 않고, 오직 내 손과 팔만 진열장 안으로 '순간이동' 시키는 고난도 도약.

눈을 감고 호흡을 맞췄다. 목표물은 시계.

손가락을 튕기는 대신, 나는 허공을 향해 손을 뻗으며 도약 스위치를 켰다.

내 오른팔이 손목 언저리부터 허공에서 뚝 끊기듯 투명하게 사라졌다.

동시에 진열장 안쪽에서 내 손이 불쑥 나타나 시계를 움켜쥐었다.

찌릿한 스파크.

시계를 낚아챘다.

보안 요원들이 유리 진열장 안의 시계가 연기처럼 증발한 것을 깨닫고 당황하는 동안, 나는 이미 백화점을 빠져나가고 없었다.

에피소드 5: 괴도 마수성

보안 레이저를 비웃는 유령의 도둑질.

첫 도둑질은 너무나도 쉬웠고, 그 짜릿함은 마약보다 강렬했다.

명품 시계는 뒷세계 장물을 취급하는 업자에게 반값에 넘겼다. 내 통장에 순식간에 4천만 원이 꽂혔다.

통장 잔고가 빠르게 올라간다.

이후 나의 타겟은 점점 대담해졌다.

붉은 레이저 보안망.

심야의 대형 금은방, 개인 수집가의 금고, 보안 레이저가 촘촘히 깔린 사립 미술관.

적외선 레이저가 아무리 빽빽하게 깔려 있어도 소용없었다.

문을 열거나 벽을 부술 필요가 없으니 알람이 울릴 일도 없었다.

나는 그저 보안망 바깥에서 목표 지점을 보고, 그 안으로 도약해서 물건을 집어 들고 다시 나오면 그만이었다.

경찰은 이 연쇄 도난 사건을 두고 '유령의 소행'이라 부르며 경악했다.

CCTV에는 항상 텅 빈 공간에서 물건만 훅하고 사라지는 기괴한 장면만 녹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불과 한 달 만에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미제 사건의 주인공, '괴도'가 되어 있었다.

생활 수준도 완전히 달라졌다. 퀴퀴한 원룸을 벗어나 한강 뷰가 펼쳐진 최고급 펜트하우스로 이사했다.

직장은 진작에 그만두었다. 내 직업은 이제 '전 세계를 털어먹는 스페이스 점퍼'였다.

아침은 파리에서 크루아상을 훔쳐 먹고, 점심은 뉴욕 타임스퀘어 상공에서 구경하며, 저녁은 도쿄의 미슐랭 식당 지갑을 털어 결제했다.

나를 가둘 수 있는 벽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돈이란 게 참 우스워. 이렇게 쉽게 가질 수 있는 거였나."

나는 펜트하우스 거실 소파에 깊숙이 기대앉아, 테이블 위에 쌓인 5만 원권 다발들을 내려다보았다.

만족감이 차올랐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돈벼락이 쏟아진다.

에피소드 6: 꼬리를 밟히다

사냥개 이강철 형사의 끈질긴 추격.

경찰청 특수수사대. 이곳에는 '사냥개'라 불리는 이강철 형사가 있었다.

그는 최근 연달아 벌어지고 있는 일명 '유령 도난 사건'의 수사팀장을 맡았다.

"유령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범인은 무조건 흔적을 남긴다."

이 형사는 수백 시간 분량의 현장 주변 CCTV를 초 단위로 쪼개어 분석했다.

물건이 도난당하는 금고 안쪽의 CCTV에는 범인의 모습이 없었다.

하지만 이 형사는 발상을 전환했다. '범인이 금고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어디서 출발했는가?'

그는 도난 사건이 발생한 시간대, 반경 50m 이내의 외부 골목이나 사각지대를 비추는 CCTV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CCTV 노이즈.

지직, 거리는 흑백 화면 속.

미술관 도난 사건 당일 새벽. 후미진 뒷골목의 가로등 불빛 아래.

모자를 푹 눌러쓴 한 남자가 허공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고, 다음 프레임에서 연기처럼 사라지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이 형사의 입에 물려 있던 담배가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이거... 합성이 아니라고?"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현상. 하지만 이 형사는 흔들리지 않았다. 초능력자든 외계인이든, 수갑을 채우면 그만이다.

그는 패턴을 분석했다. 범인은 항상 보안이 가장 삼엄한 '하이엔드 전시회'를 타겟으로 삼았다.

이 형사는 함정을 파기로 했다.

다음 주 예정된 아시아 최대 규모의 [루비의 눈물] 보석 전시회.

그는 보석이 전시될 메인 홀 주변의 모든 사각지대에 잠복 인력을 깔았다.

붉은 섬광이 눈가를 가른다.

내가 좌표를 설정하기 위해 눈을 감은 순간,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손전등 불빛이 나를 향해 일제히 쏟아졌다.

에피소드 7: 눈앞에서 사라지는 마술

포위망을 비웃으며 원격 수갑 해제.

"움직이지 마! 두 손 머리 위로 올려!!"

수십 명의 무장 경찰들이 옥상 출입문을 박차고 쏟아져 나왔다.

선두에는 험악한 인상의 이강철 형사가 권총을 겨눈 채 서 있었다.

내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꼬리를 밟혔다.

"드디어 뵙네, 유령 나리. 초능력 쇼는 끝났어." 이 형사가 비릿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경찰들이 포위망을 좁혀오며 내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옥상 난간 아래는 수십 미터 낭떠러지. 도망칠 곳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조여오는 포위망.

"무릎 꿇고 수갑 차. 반항하면 쏜다."

형사 한 명이 수갑을 꺼내 들고 내 등 뒤로 다가왔다.

차가운 금속 수갑이 내 양손 목에 찰칵, 하고 채워지려던 찰나.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어깨를 들썩이며 낮게 웃기 시작했다.

"형사님. 당신들 함정은 완벽했어요. 하지만 내 능력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네."

"뭐?" 이 형사의 미간이 구겨졌다.

"순간이동은 도망치는 게 아니에요. 그냥, 공간을 접는 거지."

나는 수갑이 채워지기 직전, 눈을 부릅뜨고 내 펜트하우스 거실의 좌표를 시각화했다.

내 두 손목에 수갑 고리가 닿는 그 찰나의 순간. 나는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강렬한 섬광.

완벽한 증발.

하지만 그의 손이 쥔 것은 허공뿐이었다. 나는 수십 명의 경찰과 채워지던 수갑만을 남겨둔 채, 말 그대로 눈앞에서 완벽하게 증발해 버렸다.

에피소드 8: 궁극의 타겟

한국 은행 지하 금고, 5천억 원의 도면.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펜트하우스로 돌아온 나는 소파에 쓰러져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슬아슬했다. 0.1초만 늦었어도 수갑을 차고 꼼짝없이 갇힐 뻔했다.

경찰이 내 정체를 특정하는 건 시간문제다. 여유 부릴 때가 아니었다.

한국을 떠나 전 세계를 무대로 도망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상상을 초월하는 자금이 필요하다.

초록색 홀로그램 도면.

나는 어둠의 경로로 구한 한국 은행 지하 금고의 극비 도면을 허공에 띄웠다.

지하 5층에 위치한 메인 금고. 두께 1미터의 티타늄 합금 문과 3중 생체 인식 보안 시스템.

물리적으로 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건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는 것만큼 불가능하다.

이곳에 보관된 미발행 신권 지폐의 액수, 약 5천억 원.

내 생애 마지막 범죄이자, 건국 이래 가장 완벽하고 규모가 큰 은행 털이가 될 것이다.

문제는 좌표의 설정이었다. 도면만으로 지하 5층의 공간을 시각화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컸다.

만약 좌표를 잘못 설정해 콘크리트 벽 속으로 이동하게 된다면? 내 몸은 벽과 융합되어 끔찍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좌표 계산은 소수점 아래 밀리미터 단위까지 정확해야 했다.

나는 꼬박 3일 동안 펜트하우스에 틀어박혀, 도면을 바탕으로 금고 중앙의 X, Y, Z 좌표를 내 뇌리에 문신처럼 새겨 넣었다.

결행의 날, 새벽 2시.

나는 검은색 특수 가방 수십 개를 바닥에 늘어놓고 도약할 준비를 마쳤다.

"이번 한 번이면, 평생 유령처럼 가장 부유하게 살 수 있어."

쿵, 쿵거리는 심장 박동.

숨을 참다.

그리고, 스위치를 켜듯 손가락을 튕겼다.

에피소드 9: 벽을 뚫는 자

5천억 원을 펜트하우스로 나르는 양자 도약.

시야가 일그러지며 짙은 어둠 속으로 전환되었다.

서늘하고 묵직한 공기가 내 피부를 감쌌다. 코끝에 새 지폐 특유의 잉크 냄새가 확 밀려왔다.

나는 눈을 떴다.

사방이 은빛 티타늄 벽으로 막힌 완벽한 밀실.

그리고 내 앞에는 거대한 팔레트 위에 컨테이너처럼 쌓여 있는 지폐의 산이 서 있었다.

돈다발의 황금빛 아우라.

오만 원권과 만 원권 신권 다발들이 숨이 막힐 정도로 빼곡하게 적재되어 있었다.

"성공이다. 내가 이 철옹성의 심장부에 들어왔어!"

나는 기뻐할 틈도 없이 즉시 챙겨 온 특수 가방을 열고 돈다발을 미친 듯이 쓸어 담기 시작했다.

가방 하나가 꽉 차자마자 나는 가방을 움켜쥐고 내 펜트하우스를 상상했다. 손가락을 튕겼다.

공간이 휙- 하고 바뀐다.

펜트하우스 바닥에 돈가방을 집어 던졌다.

곧바로 다시 금고의 좌표를 떠올리며 스위치를 켰다.

다시 금고로.

무한 교차 도약.

금고-펜트하우스-금고-펜트하우스. 내 몸은 마치 두 공간에 동시에 존재하는 양자처럼 쉴 새 없이 공간을 넘나들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호흡이 가빠졌지만 멈출 수 없었다.

지하 금고의 빽빽했던 돈탑이 허물어지고, 반대로 내 펜트하우스 거실에는 5천억 원의 돈탑이 새롭게 쌓이고 있었다.

거실을 꽉 채운 엄청난 양의 돈다발.

마지막 가방을 던진 후, 나는 거실 바닥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세상의 모든 부가 내 거실에 쏟아져 내렸다.

에피소드 10: 엔딩: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유령

영원히 잡히지 않는 미제 사건의 주인공.

다음 날 아침,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국가 중앙 은행의 메인 금고에서 5천억 원이라는 전대미문의 현금이 밤사이 증발해 버린 것이다.

지문 하나, 발자국 하나 없었다. 두께 1미터의 금고 문은 흠집 하나 없이 굳게 잠겨 있었다.

이강철 형사는 빈 금고 한가운데 서서 핏발 선 눈으로 허공을 노려보았다.

"이 미친 새끼... 결국 여기까지 뚫고 들어왔단 말인가."

무너진 자존심의 균열.

경찰의 프라이드와 완벽했던 보안 시스템이 처참하게 박살 나는 순간이었다.

그들은 전국에 수배령을 내리고 항구와 공항을 전면 봉쇄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도둑은 비행기를 타지도, 배를 타지도 않으니까.

그 시각,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남태평양의 어느 이름 모를 무인도.

에메랄드빛 해변.

하얀 백사장 위, 최고급 파라솔 아래에 내가 누워 있었다.

내 옆에는 시원한 모히토 한 잔과, 어제 훔쳐 온 5천억 원 중 일부가 든 가방이 무심하게 놓여 있었다.

바닷바람이 부드럽게 뺨을 스쳤다.

"자, 이제 이 돈으로 뭘 할까."

어차피 나는 전 세계 어디든 1초 만에 갈 수 있다.

점심엔 뉴욕에서 쇼핑하고, 저녁엔 알프스 산맥의 별장에 돈을 숨겨둔 채 와인을 마시겠지.

나는 쫓기는 도망자가 아니다. 세상의 모든 물리적 한계에서 벗어난 유일한 자유인이다.

나는 태양을 향해 손가락을 튕기며, 다시 한번 세상의 시야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영원한 증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