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위 숫자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의 머리 위에 숫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숫자의 의미는 무엇일까?
에피소드
머리 위 숫자 — 작품 소개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의 머리 위에 숫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숫자의 의미는 무엇일까?
#드라마 #미스터리 #판타지 · 10개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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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1: 머리 위의 숫자들
내 눈에 사람들의 머리 위로 기묘한 숫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번화가의 수많은 인파 속, 사람들의 머리 위로 초록색 숫자들이 둥둥 떠다닌다.] "언제부터였을까. 내 눈에 사람들의 머리 위로 기묘한 숫자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한 중년 남성의 머리 위로 떠오른 [age : 82]] '82, 45, 90... 숫자들은 사람마다 너무도 다양했다.'
"처음엔 내 눈이 어떻게 된 줄 알았다. 아니면 증강현실 게임 버그 같은 건가 싶었지."
[도진을 향해 손을 흔드는 친구 민수와 태영] "어이, 강도진! 뭘 멍하게 서 있어? 빨리 와!"
"어, 갈게!" 나는 숫자의 의미를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에겐 그저 성가신 시각적 공해일 뿐이었다.
[민수와 태영의 머리 위에 나란히 떠 있는 [age : 24]] '다만 좀 이상했던 건, 내 가장 친한 친구인 민수와 태영이의 숫자가 똑같이 24였다는 거다.'
"야, 우리 올해 스물넷 된 기념으로 이번 주말에 렌터카 빌려서 바다나 보러 가자!" 민수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맥주잔을 부딪치며 환하게 웃는 세 사람] "좋지! 도진이 너도 무조건 가는 거다? 안 가면 절교야!"
"알았어, 알았어. 갈게. 근데 너희 둘 다 머리 위에 똑같은 숫자가 떠 있는 건 알고 있냐?"
[태영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도진의 어깨를 친다.] "무슨 개소리야. 너 요새 게임 너무 많이 한 거 아니냐? 머리 위에 숫자가 왜 떠."
"아니야, 진짜로 24라고 떠 있어. 너희 지금 스물넷이잖아. 현재 나이를 보여주는 건가?"
[거리를 지나가는 아저씨의 머리 위 [age : 91] 숫자를 바라보는 도진] '하지만 현재 나이라고 하기엔 너무 말이 안 됐다. 저 아저씨는 누가 봐도 50대인데 91이 떠 있으니까.'
"도진아, 주말에 아침 8시까지 터미널 앞으로 나와라. 늦으면 버리고 간다!"
"알았어. 일찍 갈게." 그것이 내가 들은 그 녀석들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주말 아침, 나는 심한 감기몸살에 걸려 약속 장소에 나가지 못했다.
"아... 머리 깨질 것 같네. 애들한테는 미안하지만 도저히 못 가겠다."
[방바닥에 떨어진 스마트폰 화면에 '긴급 속보' 뉴스가 나온다.]
"어? 해안도로 렌터카 추락 사고... 20대 남성 2명 그 자리에서 사망...?"
[뉴스의 모자이크 된 사고 차량이 민수가 빌리기로 했던 차종과 일치했다.] "잠깐... 이거, 민수랑 태영이가 간 곳이잖아... 말도 안 돼..."
[[age : 24] 라는 숫자가 뇌리를 강타했다.] "24... 그건 그 녀석들이 죽는 나이였어. 내 눈에 보이는 건, 사람의 수명이었다."
에피소드 2: 죽음의 증명
누군가의 죽음을 미리 본다는 것의 의미.
[검은 상복을 입은 사람들 사이로, 국화꽃이 놓인 두 친구의 영정사진이 보이는 장례식장] "민수야... 태영아..."
[오열하는 친구의 부모님들을 보며 죄책감에 고개를 숙이는 도진] '내가 만약 그 숫자의 의미를 하루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녀석들을 말릴 수 있었을까.'
[장례식장 사람들의 머리 위로 무수히 많은 나이 숫자들이 깜빡였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누군가의 죽음을 미리 본다는 게 이렇게 숨 막히는 일인지."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홀린 듯이 화장실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화장실의 차가운 백색 조명 아래, 거울 속에 비친 수척한 도진의 얼굴] "내 수명은... 나는 언제 죽는 거지?"
[거울 속 도진의 머리 위에는 아무런 숫자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라? 왜 나한테는 숫자가 없지? 거울이라서 안 보이는 건가?"
'자신의 죽음은 볼 수 없는 능력. 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가 언제 죽든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아니니까.'
[인터넷에 접속해 부고 기사와 사고 뉴스를 미친 듯이 검색하는 모니터 화면] "내 눈이 진짜인지 시험해 볼 필요가 있어."
"이 뉴스 속 살인사건 피해자... 어제 길에서 마주쳤던 그 사람이야. 머리 위에 31이 떠 있었지."
[기사 내용 중 '피해자 김모 씨(31)' 라는 텍스트] "정확해. 내 눈은 단 1년의 오차도 없이 사람의 죽는 나이를 정확히 보고 있어."
[어두운 방 안, 모니터 불빛에 비친 도진의 얼굴에 기묘한 미소가 번졌다.] "이거... 엄청난 능력 아니야? 신의 영역을 훔쳐보는 거잖아."
"이 능력을 어디다 쓰지? 생명을 구하는 영웅 놀이라도 해야 하나?"
[통장 잔고 '34,120원'이 적힌 모바일 뱅킹 화면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아니. 내 앞가림도 못 하는데 무슨 영웅이야. 밀린 월세가 세 달 치다."
"부자들은 영생을 꿈꾼다지? 최소한 자기가 언제 죽을지는 가장 궁금해할 거야."
[책상 서랍에서 두꺼운 노트와 펜을 꺼내며 눈빛이 날카롭게 빛나는 도진] "그래, 팔아먹자. 이 빌어먹을 능력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거야."
"점쟁이처럼 보이면 사기꾼 취급받을 테니, '수명 감정사'라는 타이틀이 좋겠군."
[도진이 노트북으로 비밀스러운 뒷골목 커뮤니티에 광고 글을 올린다.] "'당신의 남은 수명을 정확히 알려드립니다. 오차 시 100% 환불. 상담료 500만원.'"
"미친놈 취급하겠지만, 절박한 놈은 무조건 연락하게 되어 있어."
"친구들의 죽음으로 얻은 깨달음 치고는 너무 속물적이지만... 이게 현실이다."
"이제부터 나는, 죽음을 파는 상인이 된다."
에피소드 3: 죽음을 파는 부업
수명을 감정해 주는 비밀 상담소의 시작.
[허름한 오피스텔에 간판도 없이 차려진 도진의 비밀 상담소 전경] "광고를 올린 지 일주일. 내 예상대로 절박하고 돈 많은 사람들이 연락을 해오기 시작했다."
[육중한 철문이 열리며 화려한 명품을 두른 50대 사모님이 들어온다.] "여기가 그... 수명을 알려준다는 감정소 맞나요? 생각보다 허름하네요."
"겉모습이 중요한가요. 진실이 중요하지. 앉으시죠, 사모님." 나는 거만하게 턱을 괴며 말했다.
[사모님의 머리 위로 [age : 88] 이라는 초록색 숫자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88세. 아주 무병장수하실 팔자군.'
"선불로 500만 원 입금했습니다. 제가 언제 죽는지, 진짜 알 수 있나요?"
[도진이 차가운 눈빛으로 사모님을 꿰뚫어 보며 여유롭게 커피를 젓는다.] "의심이 많으시군요. 사모님은 88세에 돌아가십니다. 아주 편안하게요."
"88세? 겨우 그거 보고 500만 원을 날름 먹겠다고? 사기꾼 아니야!" 사모님이 벌떡 일어났다.
"남편분은 최근에 돌아가셨네요. 59세에. 급성 심근경색으로." 내가 낮게 읊조렸다.
[사모님의 동공이 극도로 수축하며 몸이 굳어버렸다.] "너... 네가 그걸 어떻게...!"
'옷에 달린 검은 리본의 흔적, 그리고 저 나이대 남성 돌연사 1위가 심근경색이지. 눈치와 능력을 섞으면 완벽한 예언자가 된다.'
"제 눈엔 모든 게 보입니다. 88세까지 돈 걱정 없이 사시겠네요. 다음 손님 받아야 하니 이만 나가주시죠."
[사모님이 덜덜 떨며 지갑에서 5만 원권 다발을 더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선생님! 제, 제가 아들 수명도 좀 알고 싶은데... 천만 원 더 드리겠습니다!"
"돈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내 통장 잔고는 미친 듯이 불어났다."
[500만 원, 1,000만 원이 연속으로 입금되는 모바일 뱅킹 알림] "그래, 이거야! 세상 사람들 수명 좀 읽어주는 게 뭐 어때서. 나는 돈 벌어서 좋고, 저들은 안심해서 좋고."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비싼 스테이크를 썰며 와인을 마시는 도진의 화려한 일상] "민수야, 태영아. 너희 몫까지 내가 아주 떵떵거리며 살아줄게."
하지만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타인의 죽음을 들여다본다는 것의 진정한 무게를.
[도진의 맞은편에 앉은 젊은 벤처 사업가의 머리 위로 [age : 32] 가 깜빡인다.] "선생님, 제가 이번에 수백억 대 투자를 받는데, 오래 살 수 있겠죠?"
'이 남자, 현재 나이가 32세다. 올해 안에 죽는다는 뜻이지.'
[도진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거짓말을 내뱉는 떨리는 입술] "아... 네. 80세까지 거뜬하십니다. 투자 성공하시겠네요."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다. 오늘내일하는 사람에게 곧 죽는다고 말할 용기가, 내겐 없었다."
에피소드 4: 잔인한 숫자, 7
함부로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신의 영역.
"부업을 시작한 지 3개월 차. 내 오피스텔 문을 두드린 건, 아주 평범하고 다정해 보이는 세 가족이었다."
[30대 젊은 부부와 그들의 손을 꼭 잡고 있는 귀여운 6살 남자아이] "안녕하세요, 선생님. 예약하고 온 박준우라고 합니다."
"어서 오세요. 세 분 다 수명을 감정하러 오신 건가요?" 나는 사무적인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남편의 머리 위엔 [age : 85], 아내의 머리 위엔 [age : 87] 이 떠오르는 시각 효과] '부부는 아주 장수할 팔자군. 백년해로하겠어.'
"아니요, 저희 부부 수명만 알고 싶어서요. 우리 지훈이가 나중에 커서 결혼하는 것까지 오래오래 볼 수 있을지 궁금해서요." 아내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지훈아, 저기 소파에 가서 잠깐 로봇 장난감 가지고 놀고 있을래? 엄마 아빠 아저씨랑 얘기 좀 할게."
[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로봇을 들고 소파로 걸어간다.] "네! 얌전히 놀고 있을게요!"
나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습관처럼 머리 위를 확인했다. 그리고 내 숨이 턱 막혀버렸다.
[아이의 머리 위, 핏빛처럼 선명하게 깜빡이는 [age : 7] 이라는 숫자] '7...? 7살이라고? 이 아이, 지금 6살이잖아.'
"선생님? 왜 그러세요? 안색이 갑자기 안 좋으신데요." 남편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 아닙니다. 두 분은 아주 오래 사실 겁니다. 85세, 87세까지요. 지훈이가 결혼하는 것도 당연히 보실 겁니다."
"어머, 여보 들었어? 다행이다 정말!" 부부는 안도하며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그 환한 웃음이 내 심장을 칼로 후벼 팠다.
'아이는 내년에 죽는다. 당신들은 아이의 결혼식은커녕, 초등학교 입학식도 보지 못하고 평생을 지옥 속에서 살아갈 텐데.'
[도진이 주먹을 꽉 쥐고 부부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저기... 아버님, 어머님. 아이가 듣지 못하게 목소리 좀 낮춰주시겠습니까."
"네? 무슨 문제가 있나요?"
"두 분의 수명은 80대가 맞습니다만... 지훈이의 숫자는... 7입니다." 내가 모기만 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부부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시며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정적이 흘렀다.] "네...? 지금 우리 지훈이가... 내년에 죽는다고요? 장난치시는 거죠?!"
"쉬잇, 아이가 듣습니다! 장난이 아닙니다. 내년에 아이에게 눈을 떼지 마십시오. 특히 사고나 질병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소파에서 해맑게 로봇을 가지고 노는 지훈이의 맑은 웃음소리와 오열을 참는 부모] "아아... 우리 지훈이가... 안 돼, 지훈아..." 아내가 입을 틀어막고 소리 없는 눈물을 쏟아냈다.
"나는 처음으로 이 능력을 원망했다. 생명의 숫자는, 결코 함부로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신의 영역이었다."
에피소드 5: 무거워지는 왕관
생명의 끝을 본다는 권력의 무게.
"그날 밤, 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아내의 소리 없는 오열과, 해맑던 지훈이의 7이라는 숫자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도진이 식은땀을 흘리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다.] "하아... 하아...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그 부모는 이제 평생 지옥 같은 불안 속에서 살 텐데."
[테이블 위에 수북이 쌓인 5만 원권 돈다발들이 마치 피 묻은 것처럼 불쾌하게 보였다.]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이 돈들이 끔찍한 저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나는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이 두려워졌다.
[번화가 횡단보도, 사람들 머리 위에 뜬 숫자들이 도진의 시야를 어지럽게했다.] "저 학생은 19. 저기 뛰고 있는 직장인은 35... 왜 이렇게 일찍 죽는 사람들이 많은 거야!"
"저기요! 학생!" 나는 참지 못하고 오토바이를 탄 배달원에게 소리쳤다. 그의 머리 위 숫자는 22였다.
"네? 저 부르셨어요, 아저씨?"
[배달원의 밝은 얼굴 위로 깜빡이는 위태로운 [age:22]의 텍스트 효과] "너... 오토바이 조심해. 헬멧 꼭 쓰고, 신호 절대 위반하지 말고!"
"참나, 재수 없게 무슨 오지랖이야. 알아서 할 테니까 갈 길 가쇼!" 배달원은 신경질을 내며 굉음과 함께 사라졌다.
[며칠 뒤, 뉴스에서 그 배달원의 사망 사고를 보도하는 앵커의 목소리] "오늘 오후, 교차로에서 배달 오토바이와 트럭이 충돌하여 22세 청년이 숨졌습니다..."
"결국 죽었다. 내가 아무리 경고하고 발버둥 쳐도, 머리 위에 새겨진 운명의 숫자는 절대 바뀌지 않았다."
"나는 대체 뭘 위해 이 숫자를 보는 거지? 바꿀 수도 없는 비극을 미리 알아서 뭐 하냐고!"
생명의 끝을 본다는 것. 그것은 권력이 아니라, 숨통을 조이는 무거운 왕관이었다.
[상담소 예약 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스마트폰을 차갑게 노려보는 도진] "선생님! 제발 저희 어머니 수명 좀 봐주세요! 천만 원 드리겠습니다!"
"전화 끊으세요. 이제 영업 안 합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고객의 절박하고 분노 어린 목소리]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제발요, 우리 엄마가 언제 돌아가시는지만..."
"당신 어머니가 내일 돌아가신다고 하면, 당신은 오늘을 지옥처럼 보낼 겁니다. 모르는 게 약입니다."
[도진은 망설임 없이 스마트폰의 전원을 꺼버렸다.]
"더 이상 사람들의 절망을 돈으로 바꾸고 싶지 않다. 나는 신이 아니다."
[창문에 붙여두었던 '수명 감정소' 시트지를 거칠게 뜯어내는 도진의 굳은 결심] "오늘부로, 죽음을 파는 부업은 폐업이다."
에피소드 6: 폐업 선언
능력을 외면하기로 한 도진의 결단.
[오피스텔의 짐을 모두 빼고 텅 빈 방 안을 둘러보는 도진] "모든 예약금을 환불했다. 욕하는 사람도 있었고, 제발 살려달라며 매달리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미련 없이 오피스텔을 비웠다. 통장은 다시 가벼워졌지만, 짓눌렸던 마음은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다."
[거리를 걸으며 일부러 사람들의 정수리를 피해 바닥만 보고 걷는 도진] "숫자를 보지 않기 위해 시선을 아래로 깔고 걷는 버릇이 생겼다."
"구두코, 보도블럭, 길고양이. 숫자가 없는 세상의 것들만 보며 살기로 했다."
"저기요! 총각! 내 리어카 좀 밀어줘!"
[파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오르막을 오르는 할머니의 실루엣] "아, 네! 도와드릴게요."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할머니를 돕다, 그녀의 머리 위를 보고 말았다.
[할머니의 굽은 등 위로 평온하게 빛나는 [age : 98] 이라는 텍스트 이펙트] '98세... 할머니, 아주 오래 사시겠네요.'
"아이고, 고마워 총각. 덕분에 살았네."
[할머니가 주머니에서 구겨진 박카스 한 병을 꺼내 도진에게 건낸다.] "이거라도 마셔. 나이 먹어서 해줄 수 있는 게 이런 것밖에 없네."
"감사합니다, 할머니. 건강하세요. 정말 오래오래 사실 거예요." 나는 진심을 다해 웃으며 말했다.
[박카스를 마시며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도진의 눈빛은 차분해졌다.] "숫자를 외면한다고 해서 능력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피할 수 없다면, 이 저주 같은 시선을 어떻게 감당하며 살아야 할까."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이용했던 타인의 죽음 앞에서, 처음으로 겸허해짐을 느꼈다.
[도진이 동네의 작은 독립 서점 창문에 붙은 '아르바이트 구함' 전단지를 발견한다.] "작은 서점 아르바이트. 월급은 쥐꼬리만 하지만, 사람을 적게 마주칠 수 있겠어."
"사장님, 저 알바 면접 보러 왔는데요."
[책상에서 고개를 드는 중년의 서점 사장님 머리 위 [age : 75]] "오, 인상 좋네. 책 좋아해? 우리 서점은 손님이 별로 없어서 심심할 텐데."
"심심한 거 아주 좋아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수백만 원을 현찰로 만지던 '수명 감정사'에서, 시급 만 원짜리 서점 알바로 전락했다."
"하지만 이 조용하고 낡은 종이 냄새가 나는 공간이, 나에게는 유일한 도피처였다."
"피할 수 없는 시선이라면, 내가 보는 세상을 바꾸면 된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삶이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에피소드 7: 피할 수 없는 시선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있는 손님과의 만남.
"서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한 달. 나의 일상은 지루할 만큼 평온해졌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 아래, 카운터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 도진의 모습] "손님은 하루에 열 명 남짓. 사람들의 숫자를 억지로 보며 감정노동을 할 필요도 없었다."
딸랑-
[맑은 종소리와 함께 휠체어를 탄 20대 후반의 여성이 서점으로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저번에 주문했던 책 도착했나요?"
"아, 은수 씨 오셨네요. 네, 여기 빼뒀습니다."
단골손님 윤은수. 그녀는 일주일에 두 번씩 서점에 들러 여행 에세이를 잔뜩 사 가는 밝고 명랑한 사람이었다.
[은수의 머리 위에 깜빡이는 [age : 28]] '은수 씨의 나이는 올해 27살. 내년이면 그녀의 시간은 끝난다.'
"와, 파리 여행 책이다! 저 내년 봄에 진짜 무리해서라도 파리에 갈 거거든요. 에펠탑 앞에서 와인 꼭 마실 거예요!"
[은수가 환하게 웃으며 책을 품에 안는 모습과 도진의 쓸쓸한 눈빛이 교차한다.] "파리... 좋죠. 은수 씨라면 꼭 갈 수 있을 겁니다." 나는 목이 메는 것을 참으며 대답했다.
그녀는 근육이 점점 굳어가는 희귀병을 앓고 있었다. 휠체어를 타면서도 항상 밝게 웃었지만, 내 눈에 보이는 그녀의 한계선은 너무도 명확했다.
"도진 씨, 표정이 왜 그래요? 저번에도 그러더니 저 불쌍해서 그래요?"
[도진이 화들짝 놀라며 변명하듯 손사래를 친다.] "아, 아닙니다! 그냥 책이 무거우실까 봐..."
"에이, 저 안 불쌍해요! 휠체어 타면 다리 안 아프고 얼마나 좋은데요. 그리고 전 하루하루가 진짜 재밌거든요."
'어떻게 저렇게 밝을 수 있을까. 자신의 죽음이 1년도 채 남지 않았다는 걸 직감하고 있을 텐데.'
"은수 씨. 혹시...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알게 된다면, 어떨 것 같아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음... 저는 별로 안 알고 싶은데요? 어차피 언제 죽든 오늘 저녁엔 맛있는 떡볶이를 먹을 거고, 내일은 이 책을 읽을 거니까요."
"언제 죽든... 오늘의 일상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다 시한부잖아요. 80년을 살든 20년을 살든, 중요한 건 끝나는 시간이 아니라 채워가는 시간 아닐까요?"
[은수가 휠체어를 돌려 밖으로 나가며 손을 흔든다.] "내일 또 올게요, 도진 씨! 떡볶이 먹으러 가야 해서 이만!"
텅 빈 서점 안 , "그녀는 나에게 생명의 숫자가 가진 진짜 의미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에피소드 8: 숫자가 바뀌는 기적?
운명을 피한 남자의 결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퇴근길, 우산을 쓴 도진이 횡단보도 앞에 서 있다.] "은수 씨의 말 이후, 나는 사람들의 숫자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숫자는 저주도, 돈벌이 수단도 아니다. 그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마감일일 뿐이다."
[도진의 옆에 선 양복 차림의 중년 남성. 그의 머리 위로 [age : 49]] '이 아저씨, 얼굴이 흙빛이네. 올해가 49세일 텐데.'
남성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차도로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었다. 빨간불인데도.
[멀리서 빗길에 미끄러지며 달려오는 대형 트럭의 위협적인 전조등] "위험해!"
나는 본능적으로 우산을 내팽개치고 달려가 남성의 멱살을 쥐고 뒤로 강하게 당겼다.
[트럭이 경적을 울리며 아슬아슬하게 두 사람의 코앞을 스쳐 지나갔다.] "아씨!! 눈 안 뜨고 다녀!!" 트럭 기사의 쌍욕이 빗소리에 묻혔다.
"아저씨! 미쳤어요? 빨간불이잖아요!" 내가 숨을 헐떡이며 소리쳤다.
[바닥에 주저앉은 남성이 허탈하게 웃으며 눈물을 흘린다.] "살려줘서 고마워요, 총각. 근데... 그냥 놔두지 그랬어. 사업도 망하고, 빚더미에... 살 이유가 없는데."
나는 그의 머리 위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트럭에 치일 운명을 내가 바꿨으니, 숫자가 늘어났을까?'
[남성의 머리 위 숫자는 여전히 [age : 49] 로 변함없이 굳건했다.] "숫자는 바뀌지 않았다. 기적은 없었다."
"아저씨. 제가 아저씨를 살린 게 아닙니다. 아저씨는 오늘 죽을 운명이 아니었어요." 내가 차분하게 말했다.
"네? 그게 무슨 소리..."
[도진이 바닥에 떨어진 남성의 서류가방을 주워 무릎의 흙을 털어주었다.] "아저씨는 아직 시간이 남았습니다. 죽으려고 용기 낼 힘으로, 남은 시간 동안 빚을 갚든 가족한테 미안하다고 하든 뭐라도 하세요."
"총각..."
"끝나는 시간은 정해져 있을지 몰라도, 끝날 때 어떤 모습일지는 아저씨가 정하는 거잖아요."
[남성이 도진의 말을 듣고 무언가 깨달은 듯 서럽게 오열하기 시작한다.] "흑... 흐흑... 미안해 여보... 내가 미쳤었지..."
나는 우산을 주워 들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어쩌면 그는 며칠 뒤 병으로 죽거나 다른 사고로 죽을지도 모른다. 운명은 절대적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오늘 밤, 차가운 길바닥에서 끔찍하게 죽는 결말만큼은 피했다. 그거면 충분하다."
에피소드 9: 나의 시간, 남은 자의 시간
은수의 마지막 편지.
[시간이 흘러 이듬해 봄] "내가 수명 감정소를 폐업하고 서점에서 일한 지 1년이 지났다."
"지훈이, 머리 위에 7이라는 숫자를 달고 있던 그 꼬마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가끔 생각나지만 억지로 털어냈다."
[서점 문이 열리지만, 은수 대신 은수의 어머니가 검은 상복을 입고 들어온다.] "아... 도진 씨 계셨네요."
"어머니... 오셨습니까." 나는 직감적으로 은수의 시간이 끝났음을 알았다.
[은수의 영정 사진 속, 파리 에펠탑 합성 사진을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는 그녀] "우리 은수가 어젯밤에 자는 듯이 편안하게 떠났어요. 이거, 은수가 도진 씨한테 꼭 전해주라고 해서..."
어머니가 내민 것은 작은 편지봉투와 예쁜 책갈피였다.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열어보는 도진. 은수의 동글동글한 글씨체] '도진 씨! 제가 이 편지를 썼다는 건 아마 파리 여행은 못 갔다는 뜻이겠죠?'
'도진 씨는 참 신기한 사람이에요. 저를 볼 때마다 항상 슬프고 미안한 눈빛을 했잖아요. 꼭 제가 언제 죽을지 아는 사람처럼.'
[도진의 눈시울이 붉어지며 시야가 흐려진다.] '하지만 저는 도진 씨가 골라준 책들 덕분에, 병실에서도 파리를 걷고 우주를 날았어요.'
'제 시간은 남들보다 짧았지만, 도진 씨 덕분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아주 꽉 찬 해피엔딩을 썼습니다. 정말 고마웠어요.'
"아... 은수 씨..." 내 눈에서 기어코 눈물이 툭 떨어져 편지지를 적셨다.
[편지를 가슴에 품고 소리 없이 흐느끼는 도진의 슬프지만 평온한 시각] "생명의 숫자는 저주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28년을 누구보다 찬란하게 완성하고 떠났다."
나는 장례식을 다녀온 후,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 비친 도진의 머리 위, 여전히 텅 비어 있는 공백] "나는 언제 죽을까. 내일일까, 아니면 80살일까."
"예전에는 내 숫자가 보이지 않는 게 찜찜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나의 끝을 모른다는 건, 신이 주신 가장 큰 축복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기에, 오늘의 1분 1초를 온전히 내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으니까."
"은수 씨. 당신이 남겨준 이 책갈피, 평생 소중히 간직할게요."
"죽음의 숫자를 세는 일은 이제 끝났다. 나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체온을 느끼며 살 것이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오늘은 어떤 책을 찾으시나요?"
[서점 안으로 들어오는 손님들을 향해 환하게 웃는 도진의 모습] "나는 남은 자의 시간을, 나의 남은 시간을 온전히 사랑하기로 했다."
에피소드 10: 엔딩: 숫자가 없는 세계
초점을 바꾸니 비로소 보이는 진짜 세상.
[몇 년 후, 활기찬 주말 오후의 공원 풍경] "내 눈에는 여전히 사람들의 머리 위에 초록색 숫자들이 둥둥 떠다닌다."
[산책하는 노부부의 [age : 90], 솜사탕을 먹는 아이의 [age : 85] 텍스트가 스쳐간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숫자에 얽매이지 않는다."
"초점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숫자 너머에 있는 사람들의 진짜 얼굴을 본다."
[머리 위의 숫자 대신,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다정한 미소] "저 엄마의 숫자가 40이든 80이든, 지금 아이를 바라보며 짓는 저 사랑스러운 미소는 진짜니까."
"도진 씨! 여기에요!"
[공원 벤치에서 도진을 향해 손을 흔드는 서점 단골손님 '수연'] "수연 씨, 많이 기다렸어요? 샌드위치 사 오느라 좀 늦었습니다."
[수연의 머리 위로 잔잔하게 떠 있는 [age : 79]] '수연 씨는 79세. 나와 함께 백발이 될 때까지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에요, 날씨가 너무 좋아서 기다리는 것도 좋았어요. 샌드위치 맛있겠다!"
"수연 씨, 우리 밥 먹고 미술관 갈까요? 어제 들어온 책에 거기 전시회 이야기가 있길래."
[수연이 환하게 웃으며 도진의 손을 잡는다.] "좋아요! 도진 씨랑 가면 어디든 재밌죠."
"나는 그녀의 수명을 알지만, 그녀와 언제까지 함께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내 수명은 나도 모르니까."
"그래서 나는 수연 씨와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만약 내가 내일 죽는 운명이라도, 오늘 그녀를 향해 웃어주었다면 후회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이다. 내 눈에 숫자가 보인다는 것만 다를 뿐, 진리는 똑같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중요한 건, 그 죽음이 찾아오기 전까지 우리가 얼마나 많이 웃고, 얼마나 많이 사랑했는가 하는 것이다."
[도진의 눈앞에 떠다니던 초록색 숫자들이 민들레 홀씨처럼 흩어진다.] "어느 순간부터, 내 시야에서 숫자들의 윤곽이 조금씩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능력이 사라지는 건지, 아니면 내가 숫자를 보는 대신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웠기 때문인지는 모른다."
"도진 씨, 무슨 생각 그렇게 해요?"
[수연을 향해 활짝 웃는 도진의 얼굴] "아니요, 그냥... 오늘 날씨가 참 좋아서요. 우리 빨리 먹고 미술관 가요." 나의 세상은 이제 숫자가 아니라,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