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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 충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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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DY #DRAMA #SLICE_OF_LIFE

나의 환상이 깨지던 날

꿈꾸던 로맨스는 끝났다! 화려한 슈퍼스타들의 진상 퍼레이드 속에서 외치는 직장인의 간절한 한마디, '나 그냥 집에 갈래!'"

에피소드

나의 환상이 깨지던 날 — 작품 소개

꿈꾸던 로맨스는 끝났다! 화려한 슈퍼스타들의 진상 퍼레이드 속에서 외치는 직장인의 간절한 한마디, '나 그냥 집에 갈래!'"

#판타지 #드라마 #성장 · 10개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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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1: 권태로운 일상과 수상한 팝업창

무료한 삶을 살던 지윤에게 찾아온 기적 같은 당첨 소식.

"아, 진짜 지루하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매일 복사, 붙여넣기일까." 지윤이 사무실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지윤 씨, 한숨 좀 그만 쉬어. 땅 꺼지겠어. 오늘 점심은 김치찌개 어때?" 옆자리의 선배가 기지개를 켜며 물었다.

"어제도 김치찌개, 그제도 김치찌개... 제 인생엔 스펙터클이라는 게 없나 봐요." 지윤이 마우스를 의미 없이 딸깍거렸다.

"스펙터클 찾다가 명줄 짧아져. 그냥 평범하게 월급 루팡 하면서 사는 게 최고야." 선배가 커피를 타러 탕비실로 향했다.

"평범해도 너무 평범하잖아요. 드라마 여주인공처럼 길 가다가 탑스타랑 부딪히는 일 같은 건 현실에 없겠지." 지윤이 턱을 괴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라? 이게 뭐지?" 지윤이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화면 구석에 뜬 화려한 팝업창을 발견했다.

"당신의 지루한 일상을 구원할 단 하루의 기적! 최정상 슈퍼스타 6인과의 완벽한 릴레이 데이트? 이게 뭐야, 무슨 스팸인가." 지윤이 코웃음을 쳤다.

"참여 연예인... 배우 류진우, 모델 차은성, 가수 강도진, 아이돌 레오... 라인업 미쳤네. 사기도 정성껏 친다." 지윤이 피식 웃었다.

"어차피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속는 셈 치고 신청 버튼이나 눌러볼까." 지윤은 무심코 이름과 연락처를 입력하고 '응모하기'를 클릭했다.

"당첨자는 개별 연락 드립니다... 뭐, 이런 게 될 리가 없지. 밥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지윤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여보세요? 발신자 번호 제한? 네, 이지윤입니다만." 지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축하드립니다, 이지윤 님! '슈퍼스타 릴레이 데이트' 이벤트에 유일한 당첨자로 선정되셨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하이톤의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제가요? 에이, 이거 보이스피싱이죠? 저 통장에 잔고 3만 원밖에 없어요." 지윤이 콧방귀를 뀌었다.

"피싱이 아닙니다! 내일 오전 10시, 청담동 최고급 벤 차량이 지윤 님 자택 앞으로 픽업을 갈 예정입니다. 첫 번째 데이트 상대는 배우 류진우 님입니다."

"류... 류진우요?! 그 멜로 장인 국민 다정남 류진우요?!" 지윤의 목소리가 탕비실 밖까지 울려 퍼졌다.

"네, 맞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환상적인 데이트를 기대해 주세요!" 뚝, 하고 전화가 끊겼다.

"미친... 이거 진짜야? 나 내일 국민 첫사랑이랑 데이트하는 거야?!" 지윤이 입을 틀어막고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지윤 씨, 왜 그래? 밥 안 먹어?" 선배가 탕비실에서 나오며 어리둥절하게 물었다.

"선배님! 저 내일 연차 쓸게요! 제 인생에 드디어 역대급 스펙터클이 터졌어요!" 지윤이 핸드백을 챙겨 들며 소리쳤다.

"내일부터 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 여주인공이다! 딱 기다려라, 나의 왕자님들!" 지윤의 지루했던 심장 박동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에피소드 2: 국민 다정남의 거친 입담

부드러운 미소 뒤에 숨겨진 류진우의 살벌한 본성.

"안녕하세요, 이지윤 님. 오늘 하루 지윤 씨의 남자친구가 될 류진우입니다." 눈부신 미소를 장착한 류진우가 벤의 차 문을 열어주었다.

"헉... 실물이 백 배는 더 잘생기셨어요. 목소리도 진짜 녹네요." 지윤이 황홀한 표정으로 차에 올라탔다.

"칭찬 감사합니다. 오늘 제가 지윤 씨를 최고급 레스토랑으로 모실 겁니다. 안전벨트 매드릴게요." 진우가 부드럽게 다가와 벨트를 채워주었다.

"세상에... 테레비에서 보던 그 매너 그대로야. 나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어." 지윤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자, 그럼 출발할까요? 기사님, 한남동 쪽으로 가주세요." 진우가 카메라를 향해 한 번 더 백만 불짜리 미소를 지어 보였다.

"끼이익-!" 그때,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배달 오토바이 때문에 차가 급정거를 했다.

"아이고, 깜짝이야." 지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눈깔을 장식으로 달고 다니냐!! 뒤지고 싶어 환장을 했네 진짜!!" 갑자기 진우가 창문을 내리고 핏대를 세우며 쌍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네...? 진우 씨...?" 지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진우를 쳐다보았다.

"아, 죄송해요 지윤 씨. 제가 운전 매너 없는 놈들을 보면 참지를 못해서요." 진우가 1초 만에 다시 다정한 미소로 돌아왔다.

"아... 네... 많이 놀라셨나 보네요." 지윤이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기사님, 저 앞 벤츠 왜 저렇게 굼벵이처럼 가요? 아오, 확 밀어버릴까 보다. 차에서 내려서 멱살 한번 잡아버려?!" 진우가 다리를 달달 떨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진우 씨... 진정하세요. 멜로 장인이시잖아요..." 지윤이 조심스럽게 말렸다.

"멜로고 나발이고 운전대 앞에서는 자비가 없죠! 야!! 깜빡이는 장식품이냐 이 개나리 같은 놈아!!" 진우가 다시 창문을 내리고 고함을 질렀다.

"저기요... 카메라 돌고 있는데요..." 지윤이 차 안 구석에 달린 관찰 카메라를 가리켰다.

"아, 어차피 소속사에서 알아서 편집 다 해줍니다. 지윤 씨, 저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계세요. 씨벌탱, 길 엄청 막히네 진짜." 진우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어... 네. 참 편하네요." 지윤이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마른세수를 했다.

"지윤 씨, 저 레스토랑 주방장이 고기를 참 그지같이 구워요. 이따가 질기면 제가 엎어버릴 테니까 말만 하세요." 진우가 스윗한 미소와 살벌한 단어를 동시에 뱉었다.

"아니요... 전 질긴 고기 아주 좋아해요. 턱관절 운동도 되고..." 지윤이 바들바들 떨었다.

"이 남자는 다정남이 아니라 분노조절장애 깡패였어... 살려줘..." 지윤의 첫 번째 판타지가 쨍그랑하고 깨지는 순간이었다.

에피소드 3: 글로벌 패셔니스타의 크록스

밀라노를 제패한 모델 차은성의 난해한 사복 패션.

"하아... 류진우의 쌍욕 퍼레이드를 듣고 나니까 기가 다 빨렸어. 하지만 두 번째 데이트는 기대해도 되겠지?" 지윤이 두 번째 약속 장소인 압구정 카페 앞에 섰다.

"글로벌 앰버서더이자 런웨이의 황태자, 모델 차은성! 사복 패션 장인이니까 완전 멋지게 입고 오겠지?" 지윤이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쳤다.

"지윤 씨! 여기요, 여기!" 카페 안쪽에서 누군가 지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 차은성 님? 설마 저 사람이 차은성이라고?" 지윤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제가 오늘 숍을 안 들리고 그냥 편하게 입고 나와서." 차은성이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편하게... 입으시긴 했네요. 네." 지윤이 은성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며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차은성은 무릎이 툭 튀어나온 형광 연두색 트레이닝복 바지에, 빛바랜 붉은색 등산 조끼를 입고 있었다. 게다가 발에는 흰색 양말에 구멍 송송 뚫린 노란색 크록스를 신고 있었다.

"은성 씨... 그 조끼는 혹시 아버님 등산복인가요...?" 지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이거요? 동묘 구제 시장에서 천 원 주고 건진 빈티지 마스터피스입니다. 힙하죠?" 은성이 조끼를 펄럭이며 자랑스러워했다.

"네... 힙을 넘어서 턱까지 치고 올라오는 패션이네요." 지윤이 억지웃음을 지었다.

"지윤 씨 패션도 나쁘지 않네요. 근데 약간 밋밋한데? 자, 여기 제 선글라스 한 번 껴봐요." 은성이 주머니에서 파리 눈알처럼 생긴 거대한 미러 선글라스를 꺼내 지윤에게 씌워주었다.

"아, 앞이 안 보이는데요... 은성 씨, 사람들이 자꾸 우리를 쳐다봐요." 지윤이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였다.

"당연하죠! 제가 차은성이니까 쳐다보는 겁니다. 시선을 즐기세요, 지윤 씨." 은성이 당당하게 크록스를 끌며 카페를 걸었다.

"차라리 은성 씨 얼굴을 보고 쳐다보는 거면 좋겠어요. 형광 바지에 노란 크록스 조합이 눈부셔서 쳐다보는 것 같은데..." 지윤이 속마음을 삼켰다.

"자, 우리 빵 먹을까요? 저기요, 여기 단팥빵 다섯 개랑 쌍화차 두 잔 주세요!" 은성이 종업원에게 크게 외쳤다.

"은성 씨... 여기 프렌치 디저트 카페인데요. 쌍화차가 어딨어요..." 지윤이 이마를 짚었다.

"아, 그래요? 그럼 마카롱인가 뭔가 그거 줘봐요. 아유, 입맛에 안 맞게 달기만 하고." 은성이 마카롱을 한입에 털어 넣으며 툴툴거렸다.

"화보 속에선 시크하고 도도한 냉미남이었는데, 현실은 동네 마실 나온 백수 삼촌이잖아..." 지윤이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지윤 씨, 저랑 이따가 동묘 시장 가서 쇼핑할래요? 제가 지윤 씨 구제 옷 싹 다 세팅해 드릴게요!" 은성이 해맑게 제안했다.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저는 평범한 무채색 옷이 좋아요..." 지윤의 두 번째 판타지도 소리 없이 무너져 내렸다.

에피소드 4: 감성 발라더의 소주병

이별 노래의 대가, 강도진의 숨겨진 주사와 눈물.

"후우... 멘탈 잡자. 아직 세 명이 더 남았어. 세 번째는 음원 깡패, 감성 발라더 강도진이니까 분위기 있겠지?" 지윤이 한강 둔치의 고급 레스토랑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지윤 씨. 여기서 보니 더 아름다우시네요." 지적인 뿔테 안경을 쓴 강도진이 와인잔을 흔들며 지윤을 맞이했다.

"도진 씨, 노래 정말 좋아해요. 비 오는 날 도진 씨 노래 들으면 눈물이 날 것 같거든요." 지윤이 자리에 앉으며 팬심을 고백했다.

"고마워요. 제 음악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니 기쁘네요. 웨이터, 여기 레드 와인 제일 좋은 걸로 한 병 따주세요." 도진이 부드러운 중저음으로 말했다.

"분위기 완벽하다. 이 남자는 진짜 정상일 거야. 젠틀하고 조용하고." 지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 시간 뒤, 와인 한 병을 비운 강도진의 눈빛이 묘하게 풀려가기 시작했다.

"지윤 씨... 와인은 너무 밍밍해요. 저기요! 여기 참이슬 빨간 뚜껑으로 세 병만 갖다주세요!" 도진이 웨이터를 부르며 혀가 꼬인 소리로 외쳤다.

"도진 씨? 갑자기 소주요? 여기 스테이크 썰고 있는데..." 지윤이 당황하며 말렸다.

"스테이크엔 소주죠! 이모! 아니, 웨이터님! 잔은 글라스로 꽉 채워주쇼!" 도진이 뿔테 안경을 벗어 던지며 소리쳤다.

"도진 씨, 취하신 것 같은데 그만 드시는 게..." 지윤이 빈 소주병을 치우며 달랬다.

"안 취해쒀!! 내가 누군데! 나 강도진이야!! 으허헝... 근데 지윤 씨, 나 진짜 외로워요..." 도진이 갑자기 테이블에 엎드리더니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네?! 갑자기 왜 우세요!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요!" 지윤이 당황해서 도진의 어깨를 토닥였다.

"내 이별 노래가 왜 다 구슬픈지 알아요? 내가 맨날 차여서 그래!! 으아앙! 나도 사랑받고 싶다고!!" 도진이 콧물을 훌쩍거리며 냅킨으로 얼굴을 닦았다.

"아... 네... 힘드시겠네요. 그래도 얼굴 알려진 분인데 콧물은 좀..." 지윤이 더러워진 냅킨을 치웠다.

"지윤 씨... 나랑 2차 가요. 감자탕에 소주 한 잔 더 해야 내 영혼이 치유될 것 같아... 딸꾹." 도진이 지윤의 소매를 붙잡고 늘어졌다.

"저 감자탕 못 먹어요... 그리고 도진 씨 지금 완전 인사불성이시거든요?" 지윤이 도진의 손을 떼어내려 애썼다.

"저기 지나가는 길고양이 좀 봐요... 쟤도 나처럼 외톨이야... 야옹아, 형이랑 소주 한잔할래? 으허헝!" 도진이 창밖의 고양이를 향해 손을 흔들며 오열했다.

"세상 지적이고 차분한 아티스트인 줄 알았더니, 그냥 매일 밤 소주에 절어 사는 진상 알코올릭이었잖아..." 지윤이 이마를 짚었다.

"지윤 쒸이... 내가 노래 한 곡 뽑아줄게요.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아아~!!" 도진이 레스토랑 한가운데서 핏대를 세우며 열창하기 시작했다.

"제발 누가 나 좀 살려줘요... 빨리 다음 데이트 상대로 넘어가고 싶다..." 지윤은 도진을 매니저에게 넘기고 황급히 도망쳐 나왔다.

에피소드 5: 순수 밀크남의 매캐한 일탈

우유 냄새 대신 담배 냄새가 진동하는 아이돌 레오.

"하아... 쌍욕에, 크록스에, 알코올 중독까지. 연예인들 진짜 가지가지 한다." 지윤이 벤치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네 번째는 다르겠지. 요즘 10대들의 우상, 가장 순수하고 맑은 이미지의 19살 아이돌 센터, 레오잖아!" 지윤이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다.

"누나! 지윤 누나 맞죠? 안녕하세요, 레오예요!" 금발 머리에 뽀얀 피부를 가진 레오가 강아지처럼 뛰어왔다.

"어머, 레오 군! 화면보다 훨씬 아기 같고 귀엽다. 반가워요." 지윤이 엄마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누나, 우리 저기 예쁜 디저트 카페 가서 딸기 파르페 먹어요! 저 그거 진짜 좋아하거든요." 레오가 지윤의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렸다.

"그래, 가자. 역시 아이돌은 달라. 너무 상큼하고 순수해. 내 더럽혀진 영혼이 정화되는 기분이야." 지윤이 기분 좋게 카페로 들어섰다.

"누나, 저 파르페 나오기 전에 화장실 좀 잠깐 다녀올게요!" 레오가 해맑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천천히 다녀와." 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10분 뒤, 자리로 돌아온 레오의 곁에서 무언가 낯선 냄새가 훅 끼쳐왔다.

"어? 레오 군, 혹시 향수 뿌렸어요? 무슨 매캐한 냄새가 나는데..." 지윤이 코를 킁킁거렸다.

"아, 화장실 방향제 냄새인가 봐요. 헤헤. 파르페 맛있겠다!" 레오가 눈웃음을 치며 숟가락을 들었다.

"근데 누나, 저 전화가 와서 잠깐 밖에 좀 나갔다 올게요! 금방 와요!" 파르페를 두 입 먹은 레오가 다시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지윤은 우연히 창밖을 보다가, 카페 뒷골목 전봇대 뒤에 숨어있는 레오를 발견했다.

"어? 레오 군 전화하는 게 아니라... 손에 들린 저거 담배 아니야?!" 지윤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상큼한 밀크남 레오는 짝다리를 짚고 아주 능숙한 솜씨로 담배 연기를 도넛 모양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심지어 바닥에 침을 탁 뱉기까지 했다.

"아씨... 빡치네 진짜. 스케줄 더럽게 빡세네." 레오의 입에서 거친 아저씨 같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지윤은 창문 너머로 그 입모양을 똑똑히 읽었다.

"미친... 순수 밀크남이 아니라 골목길 양아치였잖아! 19살이라며!" 지윤이 뒷목을 잡았다.

"누나! 오래 기다렸죠? 아유, 딸기 파르페 다 녹았네. 제가 새로 하나 사드릴까요?" 골목에서 돌아온 레오가 다시 가짜 눈웃음을 장착했다.

"아니요... 레오 군 입에서 재떨이 냄새가 나서 제 식욕이 다 떨어졌네요." 지윤이 허탈한 표정으로 레오를 쳐다보았다.

"네? 재, 재떨이요? 누나 무슨 농담을 그렇게 무섭게 해요~ 하하..." 레오가 당황하며 가글액을 몰래 꺼내는 것을 보며, 지윤은 완전히 지쳐버렸다.

에피소드 6: 마초 액션스타의 비명

특수부대 출신 액션배우 백태산의 숨겨진 겁쟁이 본능.

"진짜 다들 왜 이래. TV 카메라 뒤에서는 다들 이렇게 엉망진창인 거야?" 지윤이 지친 몸을 이끌고 다섯 번째 데이트 장소인 테마파크로 향했다.

"그래도 이번엔 진짜 상남자 중의 상남자. 특수부대 출신 액션배우 백태산이니까 날 든든하게 리드해주겠지." 지윤이 마지막 희망의 끈을 부여잡았다.

"지윤 씨!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오늘 하루 확실하게 보디가드 해드리겠습니다." 근육질의 백태산이 선글라스를 끼고 묵직하게 다가왔다.

"와, 태산 씨. 팔뚝이 진짜 제 얼굴만 하네요. 너무 든든해요." 지윤이 태산의 떡 벌어진 어깨를 보며 감탄했다.

"하하, 이 정도 근육은 기본이죠. 롤러코스터 탈까요? 제가 꽉 잡아드릴 테니 겁내지 마십쇼." 태산이 호탕하게 웃었다.

"네! 완전 좋아요!" 지윤이 신나서 롤러코스터에 올랐다.

열차가 천천히 정상으로 올라가자, 묵직했던 태산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태, 태산 씨? 왜 그렇게 손잡이를 꽉 잡으세요? 손등에 핏줄이 터질 것 같은데..." 지윤이 불안하게 물었다.

"아... 아닙니다. 안전 점검 중입니다. 근데 이거 왜 이렇게 높이 올라가죠? 원래 이런 건가요?" 태산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꺄아아아아!" 열차가 하강하자, 지윤 옆에서 상상도 못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악!! 엄마!! 살려줘!! 제발 세워주세요!! 오줌 쌀 것 같아!!" 근육질의 백태산이 지윤의 팔을 부여잡고 눈물 콧물을 쏟으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태산 씨?! 특수부대 출신이라면서요! 영화에서 헬기도 맨몸으로 타시잖아요!!" 지윤이 바람을 가르며 소리쳤다.

"그건 다 CG고 스턴트맨이 타는 겁니다!! 으아아악! 나 진짜 죽어!!" 태산이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놀이기구에서 내린 태산은 다리가 풀려 벤치에 주저앉아 한참을 구역질을 했다.

"태산 씨... 괜찮으세요? 물 좀 드세요." 지윤이 한심하다는 듯 등을 두드려주었다.

"크흠... 오늘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평소 실력 발휘를 못 했네요. 산책이나 할까요?" 태산이 머쓱하게 땀을 닦았다.

공원 숲길을 걷던 중, 작은 송충이 한 마리가 태산의 떡 벌어진 어깨 위에 떨어졌다.

"어머, 태산 씨 어깨에 벌레..." 지윤이 손을 뻗기도 전이었다.

"히이익!! 벌레!! 징그러워!! 저리 가!! 으아악!!" 백태산이 괴성을 지르며 제자리에서 탭댄스를 추더니, 입고 있던 재킷을 훌렁 벗어 던지고 전력 질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저기요!! 깡패 10명도 혼자 때려잡으신다면서 송충이 하나에 도망을 가요?!" 지윤이 허탈하게 소리쳤다. 마초 액션스타의 실체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겁쟁이였다.

에피소드 7: 천재 아티스트의 철저한 더치페이

마지막 희망마저 부숴버린 한시우의 구두쇠 본능.

"나 집에 갈래... 연예인이고 뭐고 다 피곤해. 그냥 우리 집 내 침대가 최고야." 지윤이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얼굴로 중얼거렸다.

"지윤 님! 마지막 데이트 상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엔 진짜 뇌섹남, 천재 영화감독 겸 배우 한시우 님입니다!" 매니저가 지윤을 다급히 차로 밀어 넣었다.

"뇌섹남... 그래, 똑똑하고 젠틀한 어른의 매력을 보여주겠지." 지윤이 마지막 남은 체력을 쥐어짜며 북카페로 들어섰다.

"지윤 씨 오셨군요. 책을 좀 읽고 있었습니다." 지적인 미소를 띤 한시우가 두꺼운 철학 책을 덮으며 인사했다.

"시우 씨, 안녕하세요. 분위기가 정말 좋으시네요. 아까 오면서 커피는 제가 샀으니까, 저녁은 시우 씨가 맛있는 거 사주실 거죠?" 지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었다.

"아, 저녁이요? 물론이죠. 메뉴판 보시죠. 저는 샌드위치 하나 먹겠습니다." 시우가 메뉴판을 건넸다.

"그럼 저는 샐러드랑 파스타 하나 시킬게요." 지윤이 메뉴를 골랐다.

"좋습니다. 그럼 계산을 해볼까요? 샌드위치가 8천 원, 샐러드가 만 2천 원, 파스타가 만 5천 원." 시우가 갑자기 스마트폰 계산기를 켰다.

"네? 계산이요? 아직 먹지도 않았는데 무슨..." 지윤이 당황했다.

"지윤 씨가 시킨 게 2만 7천 원이고, 제가 8천 원이니까... 더치페이를 정확히 해야죠. 2만 7천 원은 제 계좌로 송금해 주시면 됩니다. 10원짜리 단위는 제가 특별히 깎아드리죠." 시우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진지하게 말했다.

"네?! 천재 아티스트라면서 고작 2만 7천 원을 칼같이 더치페이 하자고요?! 심지어 제가 더 많이 내는 거잖아요!" 지윤이 기가 막혀 소리쳤다.

"아티스트는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각자가 먹은 건 각자가 지불하는 게 이 시대의 지성인 다운 태도죠." 시우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아까 제가 산 커피값은요? 그건 왜 안 빼주세요?" 지윤이 따져 물었다.

"그건 지윤 씨가 자발적으로 호의를 베푼 거니까 계산에 넣으면 안 되죠. 아, 주차비 3천 원 나왔던데 그것도 반반 해서 1,500원 얹어서 보내주세요." 시우가 핸드폰 화면을 들이밀었다.

"와... 진짜 대박이다. 천재가 아니라 그냥 세상에서 제일 쪼잔한 구두쇠잖아요!" 지윤이 지갑에서 5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 탁자 위에 쾅 내려놓았다.

"잔돈은 됐으니까 주차비 하시고 샌드위치나 배불리 드세요, 지성인 씨!" 지윤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오, 잔돈 킵. 감사합니다 지윤 씨. 참 합리적인 여성이시군요." 시우가 5만 원을 날쌔게 주머니에 챙기며 웃었다.

"저 인간은 뇌가 섹시한 게 아니라 염치가 없는 거였어. 내 인생 최악의 하루다 진짜." 지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북카페를 빠져나왔다.

욕쟁이, 패션 테러리스트, 알코올 중독자, 골목길 양아치, 덩치 큰 겁쟁이, 그리고 극한의 구두쇠까지. 지윤의 슈퍼스타 판타지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다 부질없어. 연예인? 환상? 다 껍데기야. 그놈들도 결국 숨 쉬고 밥 먹는 치사하고 이상한 인간일 뿐이었다고." 지윤이 밤거리를 걸으며 실소했다.

에피소드 8: 환상의 붕괴, 피곤한 리얼리티

모든 데이트를 마친 지윤, 화려함 이면의 진실을 마주하다.

"하아... 내 다리. 굽 높은 구두 신고 하루 종일 시달렸더니 발가락이 다 부서질 것 같네." 지윤이 길가 벤치에 주저앉아 구두를 벗어 던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 데이트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줄 알았는데. 신데렐라는 무슨, 그냥 감정 쓰레기통이 된 기분이야." 지윤이 맨발을 주무르며 한숨을 쉬었다.

전광판에는 화려하게 차려입은 류진우와 레오가 향수 광고에서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 미소 뒤에서 욕을 하고 담배를 뻑뻑 피워댄다고 생각하니까 소름이 돋네. 소속사 기획력 하나는 인정해 줘야겠다." 지윤이 전광판을 보며 혀를 찼다.

"지윤 님, 하루 종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느새 검은 정장을 입은 이벤트 대행사 직원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고생 정도가 아니에요. 저 수명 3년은 줄어든 것 같아요. 이벤트가 아니라 무슨 서바이벌 게임인가요?" 지윤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하하, 당황하셨겠지만, 저희 '슈퍼스타 릴레이 데이트'의 진짜 기획 의도가 바로 그거였습니다." 직원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기획 의도요? 멀쩡한 환상 다 깨부수고 일반인 멘탈 털어버리는 게 기획 의도라고요?" 지윤이 따져 물었다.

"대중들은 연예인이 화면 속 모습처럼 완벽한 존재일 거라고 믿죠. 하지만 그들도 카메라 꺼지면 욕도 하고, 찌질하게 굴고, 벌레 하나에 기절하는 평범한 인간일 뿐입니다." 직원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건 저도 오늘 뼈저리게 느꼈네요. 평범을 넘어 다들 어디 하나 나사가 빠져 있던걸요." 지윤이 코웃음을 쳤다.

"그들의 흠결을 보고 나니 어떠신가요? 아직도 그들의 완벽한 삶이 부러우신가요?" 직원의 질문에 지윤은 말문이 막혔다.

"아니요... 부럽기는커녕, 저렇게 자신을 숨기고 가짜 이미지로 살아가는 게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예요." 지윤이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차은성 씨처럼 자기가 입고 싶은 엉망진창 옷을 입을 자유도 없고, 백태산 씨처럼 무서우면 비명 지를 자유도 없이 '마초'인 척해야 하잖아요." 지윤이 연이어 덧붙였다.

"정확합니다. 지윤 씨는 오늘 그들의 가장 '인간적인' 민낯을 보신 유일한 분입니다."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이벤트를 왜 하는 건데요? 제가 입 뻥긋하면 그 사람들 이미지 다 끝나는 거잖아요." 지윤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래서 저희가 지윤 씨 같은 평범하고 묵묵히 자기 삶을 살아가는 분을 선택한 겁니다. 진짜 평범함의 가치를 아시는 분이니까요." 직원이 작은 쇼핑백을 건넸다.

"이게 뭐죠?" 지윤이 쇼핑백을 열어보았다. 안에는 편안한 슬리퍼와 수면 바지 한 벌이 들어있었다.

"지윤 씨의 일상으로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화려한 드레스와 구두는 벗어 던지고, 가장 지윤 씨다운 편안한 모습을 되찾으세요." 직원이 정중하게 인사했다.

"내 일상... 가장 편안한 내 삶." 지윤은 수면 바지를 품에 안으며 묘한 위로를 받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차로 댁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직원의 말에 지윤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피소드 9: 평범함의 가치

지루했던 일상이 사실은 가장 큰 평화였음을 깨닫다.

"하아... 내 방 냄새. 역시 집이 최고야." 지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익숙한 샴푸 향기에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발가락에 밴드부터 붙여야겠다. 하루 종일 긴장하고 남의 비위 맞추느라 온몸이 쑤시네." 지윤이 편안한 수면 바지로 갈아입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 좁은 원룸이 감옥 같았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아늑하게 느껴지지?" 지윤이 방 안을 둘러보며 혼잣말을 했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지하철 타고, 부장님 잔소리 듣고, 점심에 뭐 먹을지 고민하는 거. 진짜 지루하고 재미없는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지윤이 냉장고 문을 열었다.

"적어도 내 삶엔 대중의 시선도, 나를 포장해야 하는 가짜 미소도 없잖아. 난 화나면 화내고, 배고프면 라면 끓여 먹을 수 있는 온전한 내 삶의 주인이었어." 지윤이 라면 한 봉지를 꺼내 들었다.

"보글보글... 라면 냄새 진짜 기가 막히네. 강도진이랑 먹은 그 비싼 스테이크보다 천 배는 낫다." 지윤이 냄비째 라면을 들고 TV 앞에 앉았다.

마침 TV에서는 류진우가 나오는 로맨스 드라마가 방송되고 있었다.

"지켜줄게,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TV 속 류진우가 아련한 눈빛으로 여주인공에게 대사를 쳤다.

"풉! 켁켁! 오토바이 보면서 쌍욕 하던 입으로 저런 대사를 치다니. 진짜 배우는 배우네." 지윤이 라면 사레에 들려 기침을 하면서도 폭소를 터뜨렸다.

"어휴, 저것도 극한 직업이다. 본성이랑 180도 다른 연기를 평생 해야 하잖아. 돈 많이 받을 만하네." 지윤이 혀를 끌끌 차며 후루룩 국물을 마셨다.

"차은성의 크록스와 백태산의 탭댄스는 평생 내 술안줏거리로 써먹어야지. 아무도 안 믿겠지만." 지윤이 혼자 키득거리며 채널을 돌렸다.

"내일 월요일이네. 평소 같았으면 월요병 때문에 인상 쓰고 있었을 텐데, 오늘은 왠지 출근하는 게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지윤이 빈 냄비를 싱크대에 넣었다.

"선배한테 내일 점심은 떡볶이 먹자고 해야지. 나도 더치페이는 백원 단위까지 확실하게 해줘야겠다. 한시우 흉내 내면서." 지윤이 피식 웃었다.

"지루함이 아니라 평화로움이었어. 이 잔잔하고 무탈한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기적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아." 지윤이 포근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화려한 별이 되지 않아도 돼. 난 그냥 땅에 발붙이고 따뜻한 밥 먹으면서 살래." 지윤은 기분 좋게 두 눈을 감았다.

"내일은 화장도 대충 하고 출근해야지. 아무도 날 신경 안 쓰니까 얼마나 편해." 지윤의 입가에 편안한 미소가 번졌다.

"잘 자, 나의 완벽하게 평범한 세상아." 하루 동안의 스펙터클했던 슈퍼스타들과의 데이트는 한바탕의 소동으로 막을 내렸다.

꿈속에서 지윤은 더 이상 연예인과 데이트하는 환상을 꾸지 않았다. 그저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떡볶이를 먹는 평범한 꿈을 꾸었다.

다음 날 아침, 알람 소리에 눈을 뜬 지윤은 그 어느 때보다 개운한 몸짓으로 기지개를 켰다.

지윤의 일상은 어제와 똑같았지만, 그 일상을 마주하는 지윤의 마음속엔 작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에피소드 10: 평범함이라는 진짜 기적 (엔딩)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지윤의 작지만 소중한 일상.

"지윤 씨, 주말 잘 쉬었어? 얼굴이 아주 폈네. 뭐 좋은 일 있었어?" 월요일 아침, 사무실에 출근한 지윤에게 선배가 인사를 건넸다.

"네! 아주 꿈만 같은, 아니 악몽 같은 휴일을 보냈더니 피로가 다 풀렸어요!" 지윤이 밝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악몽? 무슨 소리야. 로또라도 맞았어?" 선배가 커피를 건네며 물었다.

"로또보다 더 한 걸 맞았죠. 근데 깨달은 게 있어요. 전 그냥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이 회사가 너무 사랑스럽다는 거요." 지윤이 키보드를 경쾌하게 두드렸다.

"얘가 주말 사이에 뭘 잘못 먹었나. 회사가 사랑스럽다니,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선배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선배, 이따 점심에 떡볶이 먹어요. 튀김이랑 순대까지 팍팍 시켜서 제가 쏠게요!" 지윤이 통 크게 선언했다.

"오, 웬일로 지윤 씨가 한턱을 다 내고? 좋아, 오늘 점심은 떡볶이 파티다!" 선배가 신나서 자리로 돌아갔다.

점심시간, 지윤은 앞치마를 두르고 떡볶이 국물이 튈까 봐 조심하며 어묵을 베어 물었다.

"하아, 맛있다. 한시우처럼 10원 단위로 계산 안 해도 되고, 강도진처럼 소주 시키고 울고불고 안 해도 되는 완벽한 밥상이야." 지윤이 속으로 생각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지윤 씨, 왜 떡볶이 먹다 말고 혼자 실실 웃어? 진짜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선배가 걱정스레 쳐다보았다.

"아니에요, 그냥 이 떡볶이가 너무 평화로운 맛이라서요. 맵지도 달지도 않고 딱 좋은 맛." 지윤이 단무지를 집어 먹었다.

"퇴근하고 뭐 할 거야? 오늘 저녁에 약속 있어?" 선배가 다 먹은 그릇을 정리하며 물었다.

"아니요, 집에 가서 씻고 수면 바지 입고 넷플릭스나 볼 거예요. 제 인생 최고의 힐링 타임이거든요." 지윤이 해맑게 대답했다.

"크으, 역시 우리 직장인들의 소확행은 그거지. 수면 바지에 맥주 한 캔!" 선배가 공감하며 맞장구를 쳤다.

퇴근길, 지윤은 길거리에 걸린 아이돌 레오의 콘서트 포스터를 우연히 마주쳤다.

"우주 최강 청순남 레오라... 저 미소 짓느라 뒤에선 담배를 몇 갑이나 태웠을까. 수고가 많다, 레오야." 지윤이 포스터를 향해 작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제 지윤은 화려한 포스터 속 연예인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많은 희생과 포장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보폭에 맞춰 편안하게 걷는 퇴근길의 공기가 지윤에게는 그 어떤 레드카펫보다 편안하고 따뜻했다.

"내일도 지루하겠지만 안전한 하루가 날 기다리고 있겠지. 그거면 충분해. 진짜 기적은 이미 내 손안에 있으니까." 지윤이 밤하늘을 보며 활짝 미소 지었다.

무료했던 지윤의 삶은 더 이상 흑백이 아니었다. 스스로의 평범함을 사랑하게 된 그녀의 일상은 이미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가장 아름다운 평범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