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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 충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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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 #COMEDY

나만 알기 아까운 사후세계

에피소드

나만 알기 아까운 사후세계 — 작품 소개

트럭에 치여 죽었는데, 도착한 곳은 최고급 한우 오마카세?

#판타지 #코미디 · 10개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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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1: 이승 탈출 넘버원: 낙원행

트럭에 치여 죽었는데, 도착한 곳은 최고급 한우 오마카세?

여긴... 어디죠? 저 분명히 트럭에 치여서 죽었는데.

환영합니다, 7492번 영혼님. 이승의 지독한 고통을 끝내고 '낙원'에 오신 것을 축하합니다.

낙원이요? 그러니까 저 진짜 죽은 거네요. 아... 내일 카드값 결제일인데, 통장에 잔고도 없는데 어쩌지.

하하, 걱정 마십시오. 이곳 낙원에는 돈도, 노동도, 카드값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죠.

진짜요? 그럼 지금 당장 제가 제일 좋아하는 최고급 한우 오마카세 100인분도 가능해요?

물론입니다. 배가 불러서 고통스럽거나 살찔 걱정도 없으니 마음껏 드시지요.

와... 미쳤다. 한 입 먹었는데 입안에서 빛이 터지는 것 같아요! 안내자님, 이곳이 진정한 천국이군요!

이곳의 평화를 만끽하시기 전에, 이승에 남겨진 사람들을 볼 수 있는 '현생 관측 창'을 띄워드릴까요?

아, 네. 제 장례식장이네요. 다들 엄청 울고 있어요...

남은 자들의 슬픔은 어쩔 수 없지요. 그들은 낙원의 완벽함을 아직 모르니까요.

어휴, 우리 입사 동기 재훈이. 아주 대성통곡을 하네. '지훈아, 나만 두고 가면 어떡해!'

친한 친구였나 봅니다. 저렇게 슬퍼하니 마음이 아프시겠습니다. 위로라도 전하고 싶으신가요?

아니요? 쟤 내일 우리 팀 악마 부장한테 프로젝트 깨지고 야근할 거 생각하니까 솔직히 좀 웃긴데요. '재훈아, 넌 내일 출근이지? 난 지금 한우 먹는다!'

지훈아... 너 없는 이 지옥 같은 회사에서 나 혼자 어떻게 버티냐...

야, 버티긴 뭘 버텨! 그냥 빨리 와! 여기 오면 출근도 안 하고 매일이 최고급 풀빌라 호캉스야!

영혼님, 진정하십시오. 아무리 외치셔도 이승의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습니다.

아, 알죠. 아는데 쟤가 너무 불쌍해서 그래요. 저렇게 닭장 같은 지옥철 타고 출근해서 욕먹고 사느니, 빨리 이 낙원으로 오면 좋잖아요.

이곳에 오신 모든 영혼들이 현생 관측 창을 보며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이승의 고통을 뼛속 깊이 알기에, 사랑하는 이가 하루빨리 오길 바라게 되죠.

재훈아! 억지로 오래 살려고 맛없는 홍삼 챙겨 먹지 마! 그냥 대충 살다가 후딱 넘어와라!

내가 여기 수영장 딸린 대저택 지어놓고 바비큐 구우면서 기다릴 테니까, 천천히... 아니, 최대한 빨리 와라!

에피소드 2: 현생 관측 창의 희비 교차

이승의 고통을 10억 스포츠카로 힐링하기.

안내자님, 저 현생 관측 창은 제가 원할 때 24시간 내내 켜둘 수 있는 건가요?

네, 원하시는 언제든 이승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다만, 너무 몰입하시면 영혼의 평화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상관없어요. 오늘은 우리 재훈이 월급날이니까 한 번 볼까? '야, 김재훈! 너 드디어 월급 들어왔겠다?'

지훈아... 월급이 통장을 스쳐 지나갔어... 대출 이자랑 카드값이 다 퍼갔어...

어이구, 저 불쌍한 화상. 낙원에는 카드 할부라는 단어 자체가 없단다. '안내자님, 여기 최고급 빨간색 스포츠카 한 대 대령이요!'

원하시는 10억 원 상당의 모델입니다. 물론 유지비나 기름값도, 보험료도 들지 않습니다.

크흐! 재훈아 보고 있냐? 넌 평생 숨만 쉬고 모아도 못 사는 차, 난 여기서 1초 만에 뽑았다!

저기, 영혼님. 혼자 너무 즐거워하시는 것 같은데, 친구분은 지금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계십니다만.

그러니까 제 말이요! 저렇게 불쌍하게 살아서 뭐 합니까? 이 끝내주는 곳을 놔두고 왜 저기서 버티고 있냐고요!

아무리 이곳이 좋아도, 이승에서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는 각자의 몫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야 하는 법이지요.

아, 답답하네 진짜. '야 김재훈! 삼각김밥 유통기한 지난 거 먹지 마! 배탈 나서 고생하지 말고 그냥 마음 편하게 눈 딱 감고 오라고!'

부장님... 죄송합니다. 보고서 오늘 밤까지 다시 쓰겠습니다...

어휴, 또 깨지네 또 깨져. 저 악마 같은 부장 밑에서 왜 사서 고생이람. 내일은 또 얼마나 털리려고.

영혼님도 불과 며칠 전까지는 저곳에서 친구분과 함께 고생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까 제가 더 화가 나는 거죠! 죽고 나면 이 엄청난 낙원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그딴 회사 진작에 때려치웠을 텐데!

이승에서의 쓴맛과 고통이 있기에, 낙원에서의 평안함이 더욱 달콤하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그건 그렇지만... 아, 퇴근하는 길인가 본데 재훈이 저 녀석 우산도 안 가져왔네요. 비 엄청 오는데.

비를 맞으며 처량하게 걸어가는 친구분의 어깨가 참으로 무거워 보입니다.

재훈아! 그냥 그 비 맞고 감기몸살 씨게 걸려서 내일 회사 가지 말고 며칠 푹 쉬어라! 아니면 이참에 짐 싸서 낙원으로 건너오든가!

내가 널 위해 여기 최고급 안마의자랑 노천탕 세팅해 뒀다! 이 좋은 낙원에서 언제든 환영이다, 친구야!

에피소드 3: 부장님의 30년 만기 노예계약

콘크리트 박스 하나에 30년 빚, 사후세계는 일시불 궁전!

안내자님, 현생 관측 창에 우리 회사 악마 부장님 좀 띄워주십시오.

예, 원하시는 대상을 화면에 연결했습니다. 은행 대출 창구에 앉아 계시는군요.

보하십시오! 저 양반, 오늘 드디어 서울 외곽에 아파트 하나 샀다고 엄청나게 거들먹거리는 표정이네요.

이승에서는 자신의 명의로 된 물리적 공간을 갖는 것이 큰 성공의 상징이라고 들었습니다.

성공은 무슨 성공입니까. 저거 전부 다 은행 빚입니다.

이제부터 매달 갚아야 할 원리금이 자그마치 삼백만 원이 넘네. 인생의 쓴맛을 볼 시간이다.

저것은 30년 만기 주택 담보 대출이라는 서류군요. 이승의 삶이 다할 때까지 묶여있어야 하는 계약서 같습니다.

부장님! 그깟 콘크리트 박스 하나 사겠다고 30년 동안 은행의 노예로 살 겁니까? 얼굴에 벌써 피로가 가득합니다!

이승의 사람들은 저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는 것을 행복이라 부르며 견뎌냅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안내자님, 저기 끝도 없이 펼쳐진 에메랄드빛 해변 보이십니까?

네, 낙원에서도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해안가 좌표입니다.

저기 정중앙에 방 50개짜리 최고급 대리석 저택 하나 지어주십시오. 대출 없이 일시불로요.

완성되었습니다. 낙원에서는 영혼님의 상상력이 곧 건축 설계도이며 무한한 자본입니다.

진짜 끝내줍니다! 부동산 등기부등본도 필요 없고, 취등록세도 없고, 이자 낼 걱정도 없네요.

세금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부장님! 화면 너머로 제 목소리 들립니까? 부장님은 30년 동안 뼈 빠지게 일해서 20평짜리 아파트 샀죠?

아이고, 벌써 스트레스 때문에 혈압이 오르는 모양입니다.

전 방금 1초 만에 바다 전망 수영장이 딸린 궁전을 지었습니다! 저기서 빚 갚느라 고생하지 말고 그냥 마음 편하게 낙원으로 건너오십시오!

부장님이 빨리 오시면, 제가 이 50개 방 중에 제일 끝에 있는 단칸방 하나 내어드리겠습니다! 월세 안 받을 테니 빨리 넘어오십시오!

영혼님,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초대하셔도, 이승의 부장님 귀에는 그저 허공의 메아리로 흩어질 뿐입니다.

에피소드 4: 소개팅 잔혹사

이승의 감정 소모는 이제 그만, 낙원에는 소울메이트가 가득!

오늘은 우리 불쌍한 재훈이가 소개팅에 나가는 주말입니다. 화면 좀 띄워주시겠습니까?

이탈리안 레스토랑이군요. 친구분께서 아주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 계십니다.

머리에 왁스도 바르고, 안 입던 정장까지 꺼내 입었네요. 오늘 아주 작정을 했나 봅니다.

상대방 여성이 도착했습니다. 친구분의 눈빛이 아주 희망으로 가득 차오르는군요.

저런, 분위기가 급격하게 차가워지고 있습니다. 상대방이 시계만 쳐다보네요.

재훈아! 쓸데없는 아재 개그 좀 그만 던져! 상대방 표정이 벌써 집에 가고 싶어 하는 표정이잖아!

이승에서의 인연 맺기는 참으로 복잡하고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완전 감정 노동이죠. 맛없는 파스타 억지로 먹으면서, 어색하게 웃어주고, 거절당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이곳 낙원에서는 타인의 눈치를 보거나 관계에서 오는 상처를 받을 일이 전혀 없습니다.

제 말이 그겁니다. 재훈아! 거기서 까일까 봐 조마조마해하지 말고 그냥 밥값 내고 나와!

결국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만남이 끝난 모양입니다. 친구분의 어깨가 많이 쳐졌네요.

저 불쌍한 화상. 오늘 또 혼자 편의점 맥주 마시면서 신세 한탄이나 하겠군요.

외로움을 달래드릴 방법이 필요하십니까? 영혼님의 취향을 완벽하게 반영한 소울메이트를 생성해 드릴 수 있습니다.

오, 그런 것도 됩니까? 그럼 제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유머 코드가 잘 맞고, 세계 최고의 미모를 가진 대화 상대도 가능하다는 뜻인가요?

물론입니다. 조건 없는 지지와 완벽한 소통을 제공하는 낙원의 동반자들입니다.

말씀하시는 목소리부터가 예술이네요. 이승에서 겪는 감정 소모와는 비교조차 안 됩니다.

낙원의 모든 존재는 오직 영혼님의 평온과 기쁨을 위해 맞춰져 있습니다.

재훈아! 넌 거기서 돈 쓰고 마음 다치며 연애하려고 고생하지 마라!

여기 오면 외로울 틈이 없어! 내가 아는 모든 이상형이 여기 다 모여있단 말이다!

영혼님, 친구분은 지금 혼자 빗속을 걸으며 집에 가고 계십니다. 이승의 외로움도 그가 겪어야 할 소중한 경험 중 하나입니다.

에피소드 5: 로또 1등의 비극

세금 떼고 남는 거 없는 로또 1등, 낙원은 세금 0원!

안내자님, 오늘 이승에서는 로또 추첨일입니다. 우리 회사 영업팀 박 대리 화면 좀 볼 수 있습니까?

원하시는 대상을 연결했습니다. 방 안에서 텔레비전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군요.

저 친구, 매주 로또를 오만 원어치씩 사는 게 인생의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영혼님, 박 대리라는 분의 환호성이 화면을 뚫고 나올 것 같습니다. 당첨된 모양이군요.

와, 진짜 1등입니까? 저 인간 드디어 소원 성취했네요. 당첨금이 무려 20억이랍니다!

이승에서 20억이라는 숫자는 많은 제약을 없애주는 강력한 도구라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저 돈이면 당장 내일 사표 던지고 외제차 뽑고 난리가 나겠죠.

어라, 방금 전까지 기뻐하던 분의 안색이 급격하게 창백해지고 있습니다.

세금... 1등 당첨금의 33%가 세금으로 날아간다는 사실을 방금 검색해 본 모양입니다.

20억에서 33%를 제외하면, 이승의 화폐로 얼마나 남게 되는 것입니까?

대충 13억 좀 넘게 받겠네요. 서울에 괜찮은 집 하나 사면 끝나는 돈입니다. 평생 놀고먹기엔 택도 없죠.

꿈과 현실의 괴리가 이승의 가장 큰 고통 중 하나군요.

박 대리님! 그거 당첨됐다고 내일 당장 회사 그만두면 안 됩니다! 평생 놀고먹을 돈이 아니란 말입니다!

영혼님, 진정하십시오. 그래도 저분은 오늘 밤만큼은 이승에서 가장 행복한 꿈을 꿀 것입니다.

행복은 무슨. 세금 떼이는 거 생각하면 밤에 잠도 안 올 겁니다. 안내자님, 여기 제 거실 한가운데에 순도 99% 골드바 천 개만 쌓아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원하시는 공간에 금괴를 생성합니다.

세상에, 번쩍거리는 것 좀 보십시오. 저는 이 금괴에 대한 세금 단 1원도 내지 않아도 되는 거 맞죠?

낙원에서는 부가세도, 소득세도, 양도세도 없습니다. 원하신다면 금괴로 성벽을 쌓으셔도 됩니다.

박 대리님! 13억 받고 좋아할 때가 아닙니다! 저는 지금 제 발밑에 국고 수준의 금괴를 깔고 앉아있습니다!

그러니까 로또 맞았다고 거기서 아등바등 살지 말고, 세금 없는 이 완벽한 조세 도피처로 빨리 건너오십시오! 제가 금괴 100개 떼어드리겠습니다!

에피소드 6: 명절의 지옥

고속도로 정체와 잔소리, 사후세계는 순간이동 휴양지!

이승의 명절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영혼님, 부모님이나 친구들의 모습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명절이요? 아, 차 막히고 잔소리 듣는 그 지옥의 시즌이 돌아왔군요.

이승 사람들은 흩어졌던 가족이 모이는 뜻깊은 시간이라고 부르던데요.

그건 옛날얘기죠. 화면 켜서 우리 재훈이 고향 내려가는 길이나 한번 비춰보십시오.

명절만 되면 겪어야 하는 이승의 고질병, 귀성길 정체군요. 도로가 아주 주차장이 따로 없습니다.

세상에, 도로 전체가 거대한 주차장이 되었습니다. 차들이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군요.

제가 장담하는데, 저 녀석 지금 고속도로 위에서 화장실 급해서 식은땀 뻘뻘 흘리고 있을 겁니다.

육체의 생리 현상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이승의 큰 제약입니다.

명절은 도착해서가 더 문제입니다. 친척들 모이면 '결혼은 언제 하냐, 연봉은 얼마냐' 호구조사 시작되거든요.

정신적인 압박감도 육체의 고통 못지않게 무겁게 다가오는 모양입니다.

재훈아! 뭐 하러 그 꽉 막힌 도로에서 고생을 사서 하냐! 그냥 차 돌려서 집에서 쉬어!

친구분의 피로도가 화면 너머 낙원까지 전해지는 듯합니다.

안내자님, 저기 조용한 남태평양 섬 하나 세팅해 주십시오. 1초 만에 갈 수 있죠?

이곳에서는 좌표만 떠올리시면 공간의 제약 없이 즉시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에메랄드빛 파도가 치는 한적한 해변의 야자수 그늘 아래로 이동시켜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공간 이동을 시작합니다.

와, 교통체증 없이 단 1초 만에 하와이에 도착했습니다!

낙원의 바람은 언제나 영혼님을 위해 가장 쾌적한 온도로 불어옵니다.

재훈아! 넌 거기서 6시간 동안 운전대 잡고 고생하지 마라! 난 지금 야자수 아래서 최고급 모히토 한잔하고 있다!

차 막히고 잔소리 듣는 현생 다 때려치우고 빨리 이리 와라! 여기는 톨게이트비도 공짜, 비행기 값도 공짜다!

에피소드 7: 건강 검진의 공포

간 수치 걱정 없는 낙원의 위스키 파티.

오늘 관측 창 속의 친구분 얼굴이 유난히 창백하고 어둡습니다.

아, 오늘 재훈이 건강 검진 결과 나오는 날입니다. 저 녀석 요새 맨날 야근하고 술 마셔서 간 수치 엄청 걱정했거든요.

이승의 육체는 참으로 나약하여 주기적인 점검과 수리가 필요한 구조입니다.

점검만 하면 다행이게요?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아있을 때 그 피 말리는 긴장감은 당해본 사람만 압니다.

저 잔뜩 굳은 어깨 좀 보십시오. 의사 선생님 입술만 뚫어지게 쳐다보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네요.

의사의 입에서 어떤 단어가 나올지 기다리며 극도의 공포를 느끼고 계시는군요.

간 수치가 정상 범위를 훌쩍 넘었네요. 당분간 금주, 절대 안정입니다.

어휴, 내 저럴 줄 알았습니다. 매일 밤 야근에 회식에 시달리니 몸이 버틸 재간이 있나요.

친구분에게는 이제 음식의 절제와 고통스러운 회복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겠군요.

재훈아! 거기서 억지로 맛없는 해독 주스 마시며 고통받지 마라! 내 말 들려?

안타깝게도 친구분의 귀에는 지금 의사의 경고만 맴돌고 있을 것입니다.

안내자님, 이곳에서는 내장이 손상되거나 혈관이 막힐 일이 전혀 없다고 하셨죠?

물론입니다. 영혼의 상태는 언제나 완벽하고 순수하며, 물리적인 질병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 이 테이블 위에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귀한 50년 산 싱글몰트 위스키 10병만 깔아주십시오.

원하시는 최상급 주류를 준비했습니다.

크, 향이 기가 막힙니다. 이걸 물처럼 들이켜도 숙취도 없고 간 손상도 없다는 게 진짜 축복이네요.

이 영롱한 황금빛 좀 보십시오! 이승에서는 한 잔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술이 여기선 무한 리필이라니!

재훈아! 너 거기서 술 끊고 풀떼기만 먹으며 연명할 생각하지 마라! 난 지금 간 손상 걱정 없이 50년 산 위스키 원샷 때리고 있다!

혈압 약 먹고, 간 영양제 챙겨 먹으며 그 고장 난 육체에 미련 갖지 마!

그냥 훌훌 털어버리고 빨리 낙원으로 와! 내가 여기 끝내주는 바(Bar) 하나 차려놓고 너 오기만을 기다릴 테니까!

에피소드 8: 가족의 눈물, 그리고 진심

부모님을 위한 사후세계 VVIP 예약석.

안내자님, 오늘은 우리 부모님 모습을 좀 비춰주시겠습니까? 제 장례식 이후로 한 번도 못 봤네요.

예, 가족분들의 현재 생활 공간으로 관측 창을 연결합니다.

두 분 다 거실에 앉아 계시네요. 텔레비전은 켜져 있는데,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계십니다.

어머니의 시선 끝에는 영혼님의 어릴 적 사진이 놓여 있군요.

어머니의 손이 제 영정사진을 계속해서 쓸어내리고 계십니다. 그 애틋한 손길이 화면을 넘어 여기까지 전해지는 것 같네요.

우리 지훈이, 거기서는 밥 거르지 말고 잘 지내야 할 텐데...

아들내미 먼저 보내고 아직도 저렇게 매일 사진만 들여다보시는군요. 가슴이 먹먹합니다.

이승에 남겨진 자들에게 상실의 고통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무뎌지지 않는 법입니다.

아버지도 겉으로는 덤덤해 보이시지만, 베란다에서 몰래 눈시울을 붉히시는 걸 제가 다 압니다.

부모님의 슬픔을 덜어드릴 방법을 찾고 계시는군요.

네. 두 분 다 평생 저 키우느라 변변한 여행 한번 못 가시고, 낡은 집에서 고생만 하셨거든요.

낙원의 섭리상 이승의 일에 직접 개입할 수는 없지만, 미래를 준비하실 수는 있습니다.

준비요? 어떻게 하면 됩니까? 제가 여기서 당장 해드릴 수 있는 게 있나요?

두 분이 훗날 이승의 삶을 다하고 낙원에 도착하셨을 때, 머무르실 최고의 공간을 미리 설계해 두십시오.

아!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안내자님, 저기 가장 햇살이 따뜻하고 사계절 내내 꽃이 피는 언덕을 지정해 주세요.

가장 평온한 기운이 흐르는 남쪽 언덕 좌표를 설정했습니다.

거기에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소나무 정원을 꾸미고, 어머니가 맘껏 요리하실 수 있는 세상에서 제일 넓고 아름다운 주방이 있는 궁전을 지어주십시오.

영혼님의 진심과 효심을 담아 완벽한 안식처를 건설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두 분이 훗날 낙원에 오셨을 때 머무르실, 영원한 안식처를 보장하는 VVIP 예약 티켓입니다!

엄마, 아빠. 거기서 제 걱정일랑 절대 하지 마시고, 두 분 수명 다하실 때까지 편안하게 지내다 오십시오. 여기 낙원의 최고급 VVIP 궁전 티켓, 제가 완벽하게 예약해 뒀습니다!

에피소드 9: 뜻밖의 신입 영혼

낙원에 떨어진 전 직장 대표이사 길들이기.

안내자님, 오늘 낙원 입구 쪽 광장이 꽤 소란스럽습니다. 무슨 특별한 행사라도 있습니까?

아닙니다. 오늘 이승에서 한꺼번에 많은 영혼이 넘어오는 수속 절차가 진행 중이라 그렇습니다.

오, 새로운 신입 영혼들이군요. 저도 선배로서 구경이나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낙원에는 선후배나 상하 관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만, 영혼님의 뜻대로 입구 쪽 시야를 열어드리겠습니다.

저기가 낙원의 입구군요! 셀 수 없이 많은 영혼들이 이승의 짐을 내려놓고 이곳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새로운 영혼들의 낙원 입성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네요. 제가 처음 트럭에 치여서 여기 왔을 때랑 똑같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곳의 무한한 자유를 깨닫기까지는 약간의 적응 시간이 필요합니다.

잠깐만요. 저기 제일 앞에서 안내자님한테 뭔가 따지고 있는 저 양반... 낯이 많이 익은데요?

어느 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회색 정장을 입고 계신 영혼 말입니까?

네, 맞아요! 저 사람 우리 회사 대표이사 아닙니까! 아니, 저 인간이 왜 벌써 여기에 와 있죠?

이승에서의 명성이나 지위와 무관하게, 수명이 다하면 누구나 이곳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보시오! 내가 내일모레 회사를 상장시켜야 하는데 지금 죽으면 어떡하란 말이오! 당장 날 원래대로 돌려놓으시오!

대표님, 이승에서 아무리 큰 부를 쌓고 권력을 쥐셨다 해도 낙원에서는 그저 1명의 평등한 영혼일 뿐입니다.

아이고 꼬시다! 이승에서 맨날 직원들 쥐어짜며 갑질하더니, 여기서 저렇게 쩔쩔매는 꼴을 보게 되네요.

원하신다면 다가가서 인사를 건네셔도 됩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제가 이승에서는 말단 사원이었지만, 여기 낙원에서는 짬바가 한참 앞서는 대선배 아닙니까.

낙원의 1년 차 대선배로서 위엄을 좀 보여줘야겠습니다. 이승에서 제일 비쌌던 명품 선글라스 장착 완료!

어이, 대표님! 거기서 상장 못 했다고 억울해하지 마시고 진정하십시오! 여기서는 대표님 주식 쪼가리 단 1원도 안 쳐줍니다!

이승에서 돈 번다고 아등바등 살지 말고 진작에 저처럼 넘어오셨어야죠! 낙원 1년 차 선배인 제가 이곳 룰을 뼈저리게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에피소드 10: 엔딩: 낙원 예약석

언젠가 도착할 친구를 위한 최고의 선물.

안내자님, 이곳 생활이 너무 완벽해서 불만이랄 게 전혀 없습니다만.

네, 영혼님의 표정에 평온함이 가득하여 저 역시 기쁩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딱 한 가지, 이승에 있는 우리 재훈이에게 메시지 하나만 전하고 싶습니다.

이승의 물리 법칙을 거슬러 직접 육성을 전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주 희미한 파동의 형태라면 가능합니다.

파동이요? 그게 어떤 방식입니까? 폴터가이스트처럼 물건을 움직이는 건가요?

아닙니다. 친구분이 가장 깊은 수면에 빠졌을 때, 꿈의 무의식 속으로 영혼님의 이미지를 잠시 투영하는 방식입니다.

아, 꿈에 나타나는 거군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당장 연결해 주십시오.

영혼님의 파동이 재훈 님의 깊은 무의식의 강을 건너, 안전하게 꿈속 공간으로 스며들고 있습니다.

친구분의 무의식 공간과 연결되었습니다. 영혼님의 모습이 친구분의 꿈속에 나타났습니다.

지훈아...? 너 지훈이 맞지? 네가 어떻게 내 꿈에...

어, 나야 재훈아. 놀라지 마라. 내가 지금 머무는 곳이 너무 끝내줘서 너한테 자랑 한 번 하려고 왔다.

너 없는 회사에서 매일매일이 생지옥이야. 네가 없으니까 숨이 막혀서 살 수가 없어.

야, 임마. 찌질하게 굴지 마. 내가 이승에서 관측 창으로 너 매일 훔쳐보고 있다. 밥 좀 든든히 챙겨 먹고 다녀.

나도 너 있는 곳으로 그냥 빨리 가버리고 싶다. 거긴 안 힘들어? 빚도 없고 야근도 없어?

당연하지. 여기는 네가 상상하는 모든 제약이 사라진 완벽한 파라다이스야. 돈, 질병, 상처, 스트레스 전부 제로다.

진짜...? 나 당장이라도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냐?

어허, 안 돼. 급하게 올 생각하지 마. 여기는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이승의 쓴맛이 가끔 그리워질 정도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빨리 오라며.

거기서 겪을 수 있는 희로애락 다 겪고, 지독하게 버티다가 수명 다 채우고 당당하게 넘어와. 알겠냐?

내가 여기 낙원 한가운데에, 너를 위한 완벽한 예약석 하나 비워두고 기다릴 테니까. 천천히 와라, 내 친구.